휴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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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와의 대화
2009.08.16 일요일 우리 가족은 아빠 친구, 동규 아저씨 가족을 만나, 중국 요리집으로 들어갔다. 동규 아저씨가 우리가 대구에 온 기념으로 맛난 것을 사주셨다. 우리는 신이 나서 떠들며 가족석으로 줄줄이 들어갔다. 나는 영우와 나란히 앉고, 나랑 나이가 같은 친구 은지와, 은지 동생 민재는 맞은 편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낮에는 할아버지 생신이라 한식을 배불리 먹었는데, 저녁엔 중국 음식이라~ '이거 오늘 땡 잡았군!' 하면서 팔보채, 탕수육, 자장면을 쩌접쩌접 먹었다. 그중 자장면이 제일 맛있어서, 나는 후루룩~ 씹지도 않고 넘겼다. 엄마가 나와 은지에게 자꾸 대화를 나눠보라고 하셨지만, 우린 그럴 때마다 안녕? 응~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영우는 마주 앉은 민재에게 툭툭 장난을 치며 먹었고, ..
2009.08.19 -
책상에게 미안해!
2009.07.08 수요일 난 오늘 엄마에게 딱 걸렸다. 그동안 내 방을 청소하지 않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정리하겠다고 얼렁뚱땅 미루어오다가, 결국 엄마를 폭발하게 한 것이다. 엄마는 쓰레기가 쌓여 날파리가 맴도는 내 책상을 부숴버릴 듯한 기세로 화를 내셨다. 나는 한바탕 혼이 난 다음, 묵묵히 내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 책상을 한참 바라보다가, 흐음~하고 한숨을 쉬었다. 햇빛을 받지 못한 낡은 성 안에, 난쟁이들이 마구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계단처럼, 책, 공책, 교과서, 종이 쪼가리, 휴지들이 겹쳐서 층층이 쌓여 있었고, 책더미 사이로 생긴 구멍에선 금방이라도 생쥐들이 들락날락할 것 같이 지저분했다. 나는 허리를 조금 굽혀서 책상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는 월요일마다 집앞에 재활용품..
2009.07.09 -
기브스하던 날
2008.12.19 금요일 어제 힘찬이 교실에서 줄넘기를 하다가 다친 오른쪽 발목과 발등이, 저녁내내 심하게 부어올랐다. 나는 발을 높이 올리고 얼음찜질을 하면서, 고단하게 밤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아빠, 엄마와 병원에 올 수 있었다. 엄마가 병원 문을 열고, 아빠가 나를 업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빠가 접수를 하는 동안 대기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종합 병원 안에는 마침 다리 아픈 환자들의 모습이 유달리 눈에 잘 띄었다. 목발을 짚은 사람도 있고, 기브스를 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좀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긴장한 상태로 다시 아빠 등에 업혀 정형외과로 향했다. 나는 아빠의 등 위에서 의사선생님을 내려다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였다. 의사 선생..
2008.12.21 -
달팽이와 수업하는 아이들
2008.05.29 목요일 3교시 체육 시간이 끝나고 중앙 화단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데, 화단 풀숲 여기저기에서 달팽이가 보였다. 실내화를 갈아신던 아이들은 달팽이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올리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였다. 달팽이를 자세히 보니, 조그만 게 귀엽기도 하고, 툭 튀어나온 까만 눈에 뭔가 닿으면, 눈을 살 속으로 집어넣었다가, 다시 쑥 나오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제각기 달팽이를 몰래몰래 교실로 가져갔다.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은 달팽이를 나름대로 보관하며 수업을 들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하여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아이는 언제 준비했는지, 커다란 병뚜껑에 휴지를 깔고, 물을 적셔 그 위에 풀잎을 몇 장 얹어, 달팽이를 올려놓았다. 또 어떤 아이는 책상 위에..
2008.06.02 -
서러운 감기
2008.03.26 수요일 3교시 수업을 앞두고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갑자기 머리가 쑤시고 속이 울렁거리면서 아침에 먹었던 주먹밥 냄새가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나는 속으로 '이제 소화가 되나 보네!'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교실 앞 복도에서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수그려지면서, 입에서 하얀색 액체가 액! 하고 쏟아져 나왔다. 그러더니 그것은 복도 바닥에 떨어져 눈사태처럼 쌓였다. 나는 놀라 '어마,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뒤로 물러났는데, 지나가던 아이들이 똥 싼 괴물을 본 것 마냥 "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고, 어떤 아이는 코를 막고 "아이, 더러워!" 하며 나를 피해 갔다. 나는 진땀이 나면서 목이 찔리듯 따끔따끔 아파졌지만, 더 괴로웠던 것은 아이들이 나를 못 견디게 더러운 눈으로 바라..
2008.03.28 -
2006.12.14 명화 따라 그리기
2006.12.14 목요일 오늘은 2교시 쉬는 시간 때부터 명화 따라 그리기 시간이 있었다. 꼭 똑같이 그려야 하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바꿔도 되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좀 망설였다. 왜냐하면 그림 그릴 걸 생각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 그릴 걸 찾다가 고호에 를 그리기로 하였다. 나는 색깔이 번질 때마다 휴지를 그 부분에 대었다. 중간에 미선이가 자꾸만 물감을 빌려달라고 해서 귀찮기도 하였고, 붓을 헹구지 않고 색을 칠해서 이상하고 지저분한 색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자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아예 해바라기를 직접 키워 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2006.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