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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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에서
2013.12.12 목요일 4교시 후, 안국동 북촌한옥마을 체험학습을 위해 학교 문을 나섰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 같지만, 북촌한옥마을의 정확한 위치를 잘 몰라서, 학교에서 나눠 준 지도를 토대로 우리가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안국동 지역을 샅샅이 알고 있다는 형진이를 앞장 세웠다. 마침 하늘이 온통 하얀색이었고, 그 사이사이로 작은 알갱이들이 마구 휘날렸다. 언제부터 내렸을까? 벌써 운동장은 갈색 모래바닥보다 하얀색 눈밭이 더 많았다. 아침부터 꾸물꾸물 하늘이 온통 잿빛이더니, 결국에는 제설기가 터진 것처럼 하늘에서 눈이 우수수수 떨어졌다. 아이들의 반응은 선명하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아직 동심이 살아 있는 걸까? 맨손이 불에 덴 것처럼 새빨개진 채로, 아무 감각도 없어질 때까지 눈뭉치..
2013.12.12 -
사촌 형과 걸으면 밤길이 무섭지 않아!
2011.02.03 목요일 '집합이... 부분 집합... 공집합에...' 나는 너무 심심해서 할아버지 댁 안방 의자에 앉아, 중학교 수학을 노트에 필기해보고 있었다. 그때 '비리비리비! 비리 비리비리~!' 하는 초인종 소리가 귀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막내 고모네가 오신 건가?' 기대하며 현관으로 나갔다. 문이 열리더니 제일 먼저 막내 고모, 그리고 고모부, 나와 동갑인 혜영이, 그리고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정욱이 형아가 모습을 나타내었다. 나는 정욱이 형을 보자마자 형아 등을 두드려주며 웃었다. 형아도 그러는 나를 보고 살며시 웃었다. 형아는 마지막으로 본 할머니 칠순 때랑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조금 길었나? "안녕, 형아?", "그래, 안녕!" 거실에서 가족들이 인사를 나누..
2011.02.06 -
눈 온 날은 끔찍해!
2009.12.28 월요일 밤새 눈이 내려서 집 앞마당이 아이스크림 왕국처럼 하얗게 빛났다. 나랑 영우는 부랴부랴 옷을 입고 놀이터로 향했다. 너무 추우니까 조심하라는 엄마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길바닥에는 발목까지 덮을 정도로 눈이 쌓였다. 우리는 눈밭 위를 걷는 펭귄처럼 기우뚱기우뚱 탑탑! 일부러 눈이 많이 쌓인 곳을 밟고 다녔다.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맑게 울렸다. 나는 실수로 그만 얼음이 단단하게 언 땅을 밟아서 한발로 쭉 미끄러져 갔다. 그런데 한 발은 얼음 위에 있고, 다른 한쪽 발은 시멘트 땅 위에 딛고 있어서, 땅에 있는 발이 얼음 위에 발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두 손을 허공에 마구 휘젓고, "으어어어~" 고함을 지르며 헛발질을 하면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2009.12.31 -
끝장나게 추운 날
2009. 12.15 화요일 계단 청소를 마치고 교실을 나섰는데, 이미 아이들은 집에 가고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복도 창틈마다 차가운 바람이 위이잉 하고 새어나올 뿐! 바람은 복도를 물길 삼아 돌다가, 가스가 새듯이 흘러들어 복도 안을 불안하게 워~ 돌아다녔고, 나는 이 바람이 몸을 스르륵 통과하는 유령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을 때, 내 몸은 눈사태 같은 추위에 파묻혀버렸다. 나는 추위에 쪼그라든 몸을 최대한 빨리 일으켜 얼음처럼 딱딱한 신발을 후닥닥 갈아신었다. 정문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내려갈 때 내 몸은, 바람에 밀리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바람을 가르는 운석처럼 타타타타~ 굴러 떨어졌다. 그러자 정문은 괴물처럼 입을 쩍 벌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더 큰 바람을 쿠후우..
2009.12.16 -
추운 날의 라틴 댄스
2009.11.22 일요일 포천 허브 아일랜드 연못은 벌써 살얼음이 얼었다. 추워서 덜덜 떨며 걷다가, 우리는 라틴 댄스 공연을 하는 임시 야외무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야외무대를 둘러싼 울타리 바깥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나무로 만든 무대 끝 사람들 앞으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어린 무용수들이 줄지어 걸어나왔다. 모두 석고상같이 하얀 얼굴에 고양이처럼 길게 올라간 눈 분장을 하였다. 남자 아이들은 가슴이 파진 검은 블라우스에 꽉 끼는 검은 바지를 입었고, 여자 아이들은 화려한 비키니 수영복같이 거의 살이 드러나는 무대 옷을 입고 나왔는데, 바람이 차가운데다 빗방울까지 날려서 참 딱해보였다. 대부분 키는 나보다 조금 커 보이는데, 몸은 내 반쪽만큼 말랐을까? 추워서 그런지 긴장해서 그런지 다 ..
2009.11.23 -
헌법재판소 판결처럼 우울한 날씨
2009.10 31 토요일 점심을 먹고 축농증 치료를 받으러 상가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제까지 아파트 단지마다 붉고 노란 나뭇잎이 땅바닥에 가득 뒹굴었고, 나뭇가지에도 빨간색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예뻤는데, 오늘은 다르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그동안 가을을 지켰던 풍성한 나뭇잎을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떨어내버렸다. 그래서 나뭇가지들은 바짝 말라서 쪼글쪼글해진 할머니 손처럼, 또는 X레이에 찍은 해골의 손뼈처럼 가늘가늘 앙상하다. 내가 조금만 건드려도 톡 부러질 것 같다.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었던, 가을의 빨간 축제가 매일 열리던 길목은 이제 끝났다. 내가 걷는 길은, 차가운 비가 투툴투툴 내리는 추억 속의 쓸쓸한 길이 돼버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산 속에서 햇빛을 못 받아 어..
2009.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