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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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님께 드린 선물
2014.06.14 토요일 몸살이 심하게 나 조퇴하고, 병원 가서 주사를 맞은 게 어제 일인데 당장 지금 그 몸을 이끌고 쌩쌩한 척, 박원순 시장님을 만나려니, 내 몸의 저 안쪽에 갇혀있는 내가 데굴데굴 구르며 발광을 하는데, 겉으로 나오는 웃음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은 시장님께, 내가 쓴 책을 선물로 드리려고 약속한 날! 재선된 지 얼마 안돼서 무지 바쁘실 텐데도 시간약속을 해주신 시장님과의 만남을 놓칠 순 없다. 나는 2년 전 중학교 2학년 때, 블로거 간담회를 통하여 시장님께 즉흥적으로 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시장님의 집무실에는 도서관처럼 책이 많았기 때문에 어린 학생인 내게 책 한 권, 즉석에서 뽑아 선물하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
2014.06.14 -
보름달과 두루미
2013.09.18 수요일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으니까 몸이 뻐근했는데 보름달이 무지 밝았다. 나는 밤 10시,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엄마와 영우와 함께 산책을 다녀 오겠습니다!" 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바깥은 어둡고 캄캄했지만, 조용하게 걷기에는 시원하고 포근한 공기였다. 여기는 대구 달성군 화원읍 아파트 단지, 친할아버지께서 살고 계신 곳이다. 아파트 단지 후문 밖을 벗어나자 개천이 가운데 흐르는 산책로 겸, 놀이터가 바로 보인다. 나무 계단을 밟고 내려가 놀이터로 접어드니, 사박사박한 모래길에 걸음이 홀린 듯 척척 걸어진다. 개울가를 따라 잔잔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을 맞으며, 나는 앞장 서 힘 있게 걸었다. 보폭을 넓혔다가 줄였다가, 한쪽 발을 들었다가 내렸다가, 뜀박질을 뛰었다가 주저앉았다 하며, ..
2013.09.21 -
출판사 <북인더갭>에 숨은 뜻
2013.05.11 토요일 오늘은 중간고사가 끝난 주말이라 오랜만에 늘어지게 늦잠을 잤다. 눈을 뜨니 감기 기운 때문에 코가 막히고 온몸이 힘 빠진 고무줄처럼 이불 위에 푹 늘어진다. 다시 잠이 헤롱헤롱 들려고 하는 순간, 퍼뜩 오늘 북인더갭 출판사에 가기로 약속한 것이 떠올랐다. 나는 화다닥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며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상우야, 머리 감을 시간 없는데~ 약속 시간 늦겠다아~!" 나는 수도물을 틀어 머리에다 꽂아넣듯이 하고, 샴푸를 묻혀 주차작~ 주차작~ 머리를 감았다. 북인더갭은 일산에 있는데, 일주일 전 사무실을 다른 블럭으로 옮겼다고 한다. "엄마, 이사를 했으면 집들이 선물이 필요 해요!" 나는 들떠서 동네 시장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들고 일산으로 향했다. 아빠는 힘차게 운전을 ..
2013.05.12 -
날아가 버린 원고
2010.01.14 금요일 "어, 어, 아아악~!" 아래층 할머니 방에서 책을 읽다가, 몸을 풀려고 콩콩거리며 뛰고 있을 때, 엄마의 비명이 내 귓속으로 들어왔다. 정적을 깨버리는 소리는 왠지 불길했다. 나는 무언가 일이 났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위에서는 계속 "오오~!" 하고 엄마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계셨다. 나는 '엄마가 실수로 뭐에 베였나? 아니면 영우가? 오! 핸드폰이 터져서 집에 불이 붙었나?' 하는 오만 가지 상상을 하였다. 위층으로 급하게 올라가 보니, 엄마는 컴퓨터 의자에 앉아서 죽을상을 하고 계셨다. 무슨 사고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하고 물었다. 엄마는 몹시 흥분하셨나 보다. "이, 이게, 아~ 지, 지워졌어~!" 하며 어더더..
2011.01.16 -
환경운동연합에서 저녁 먹기
2010.09.27 월요일 추석 연휴가 끝나고, 학교에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갔다 오려니 몸이 조금 피곤하였다. 집에 와서 손발을 씻고 저녁을 먹고 잠깐 눈이나 붙일 생각으로 계단을 올라가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전화를 받으셨다. "여보세요? 응, 그랴~ 어, 상우하고 영우만 집에 있는데! 응? 저녁 지금 막 먹었는데? 또? 그랴~ 됐어, 됐어." 할머니께선 전화를 끊으시더니 아직 아래층에 있던 영우에게, "영우야, 아직 배 더 고프니?" 물으셨다. "삼촌이 지금 집 앞에 환경 연합에서 저녁 먹는데 같이 먹자 하네!", 영우는 "네! 가고 싶어요!" 하였다. 참! 여러분께 우리 외삼촌을 이야기해 드렸나? 우리 막내 외삼촌은 유모 감각이 넘치는 분이다. 그리고 변호사이며 환경 연합 회원이기도 하다. 나는 ..
2010.09.29 -
왕잉어 뽑기
2010.05.11 화요일 오늘은 1년에 한 두 번 열리는 야시장이, 4단지에서 열리는 날이다. 여러 가지 볼거리와 먹을거리들이 가득해서, 우리 반은 아침부터 야시장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친한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만날 시간을 정했다. 나와 석희도 7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었는데, 석희가 사정이 있어서 나오지 못하여, 영우와 엄마를 졸라 산책하러 나갔다. 4단지에 들어서니 색색의 천막이, 4단지 시작 부분에서 도로 끝 부분까지 이순신 장군의 일자진을 친 듯 휘황찬란하였다. 천막마다 여러 가지 노점상과 즉석 음식점이 나와서, 밝게 핀 등불 아래 오색으로 빛나는 물건들을 잔뜩 풀어놓았다. 책과 장난감, 아이스크림과 문어 빵, 떡볶이, 어묵, 통닭, 작은 바이킹, 술과 안주 가게, 금 매매 하는 곳, 그리고 ..
2010.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