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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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을 걷다!
2009.07.09 목요일 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다니! 수업이 끝나고 학교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으려던 나는, 엄청나게 내리는 비를 보고 순간 주춤하였다. 학교 밖은 우산을 써도 피할 수 없을 만큼 비가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늘 내내 멈추지 않고 쏟아졌고,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집은 괜찮나요? 혹시 떠내려가진 않았죠?" 나는 복도에 있는 학교 전화기로 집에 전화를 걸어 안전을 확인한 다음, 비와 맞서는 전사가 된 기분으로 학교를 나섰다. 교문으로 내려가는 언덕 위에서 보니 세상은 물바다였다. 도로, 인도 곳곳에 조금이라도 움푹 팬 자리는, 빗물이 흙탕물 호수처럼 고였고, 그 위로도 거친 빗물이 포봉 퐁 포봉~! 하고 운석처럼 ..
2009.07.11 -
개미들이 떠내려가는 골짜기
2009.06.20 토요일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하교길, 간신히 붙잡고 오던 낡은 우산 살이 휘어지면서, 우산도 확 뒤집혔다. 내 몸은 더 젖을 것이 없을 만큼 스펀지 상태였다. 이제 물에 잠긴 놀이터 맞은 편 인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오르막이 보이고, 이 오르막만 넘으면 집 앞에 도착할 것이다. 이 오르막길에서는, 위쪽에서부터 흙길에 고인 듯한 빗물이 아래로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폭이 좁게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암벽들 사이로 흐르는 물길처럼 거침없었다. 그래, 그것은 세차게 물이 흐르는 깊고 긴 산골짜기와도 닮았다. 그런데 무언가 까만 점 같은 것들이 물길에 섞여 동동거렸다. 몸을 수그려 자세히 보니, 그 물길과 물길 주위로, 미처 비를 피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 개미들이 허둥대..
2009.06.21 -
내년에 만나자 물로켓!
2009.04.07 화요일 오늘은 드디어 물로켓 발사하는 날! 3교시가 되자 나는,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 함께 했던 상상 속의 조종사 한 명과 마지막 화이팅을 외치며, 기대에 들떠서 교실 밖으로 나왔다. 지난주 토요일은 과학 행사의 날로 온종일 물로켓을 만들었고, 월요일인 어제 운동장에서 발사하려 했는데, 펌프에 이상이 생겨서 오늘로 미루어진 것이다. 4학년까지는 글짓기를 선택하여 써냈는데, 이번에는 글짓기 종목이 사라져서 처음으로 물로켓 발사에 도전해 보았다. 나는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까? 잘 날게 할 수 있을까? 밤 늦게까지 아빠랑 설명서를 보고 연구하고, 인터넷을 뒤지며 고민했었다. 그러면서 왠지 신이 났다. 우리 반은 물로켓 발사하는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
2009.04.08 -
기브스하던 날
2008.12.19 금요일 어제 힘찬이 교실에서 줄넘기를 하다가 다친 오른쪽 발목과 발등이, 저녁내내 심하게 부어올랐다. 나는 발을 높이 올리고 얼음찜질을 하면서, 고단하게 밤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아빠, 엄마와 병원에 올 수 있었다. 엄마가 병원 문을 열고, 아빠가 나를 업은 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빠가 접수를 하는 동안 대기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종합 병원 안에는 마침 다리 아픈 환자들의 모습이 유달리 눈에 잘 띄었다. 목발을 짚은 사람도 있고, 기브스를 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좀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긴장한 상태로 다시 아빠 등에 업혀 정형외과로 향했다. 나는 아빠의 등 위에서 의사선생님을 내려다보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였다. 의사 선생..
2008.12.21 -
병원에서
2008.09.06 토요일 나는 너무 아파, 일주일 전부터 경훈이와 놀기로 했던 약속도 취소하고,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상가마다 문을 열지 않았거나, 일찍 문을 닫은 병원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우리는 유일하게 문을 연, 4단지 상가 1층 소아과를 찾았다. 병원 안에는 먼저 온 아이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다. 어떤 아기는 유모차에 누워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끼야아아~" 울음을 터뜨렸고, 한 서너 살쯤 돼 보이는 남자 아이는, 병원에 있는 인형의 바지를 내렸다 올렸다 하며 놀았다. 또 내 또래의 여자아이는 소파 위에 다리를 양쪽으로 벌리고 앉아 몸을 수그리고 핸드폰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요 며칠 동안 나는 계속 두통에 시달렸다..
2008.09.07 -
봄의 향기
2008.03.01 토요일 오늘따라 집안 공기가 텁텁하여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다. 창문 밖에서 쨍쨍 빛나는 해가 나를 부르는 거 같았다. 방과 마루에서 먼지를 피우며 펄쩍펄쩍 뛰어놀다가, 기침을 심하게 해서 엄마에게 꽥 잔소리를 들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켰다가 책을 폈다가 했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내 심장이 타오르고 내 영혼이 요동치네요! 내 온몸이 굶주린 짐승처럼 근질거립니다! 그러니 나 놀러 나갈게요!"라고 쪽지에 써놓고 집을 나와버렸다. 나는 순식간에 공원까지 다다랐다. 공원에서 빌라단지로 접어드는 계단을 팡팡 뛰어내려, 우석이 집앞에서 벨을 힘차게 누르고 "우석아!" 소리쳤다. 우석이 집에 아무도 없음을 알고 다시 돌아 나와 그때부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2008.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