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이 떠내려가는 골짜기

2009. 6. 21. 12:22일기

<개미들이 떠내려가는 골짜기>
2009.06.20 토요일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하교길, 간신히 붙잡고 오던 낡은 우산 살이 휘어지면서, 우산도 확 뒤집혔다. 내 몸은 더 젖을 것이 없을 만큼 스펀지 상태였다.

이제 물에 잠긴 놀이터 맞은 편 인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돌면, 오르막이 보이고, 이 오르막만 넘으면 집 앞에 도착할 것이다. 이 오르막길에서는, 위쪽에서부터 흙길에 고인 듯한 빗물이 아래로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폭이 좁게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암벽들 사이로 흐르는 물길처럼 거침없었다. 그래, 그것은 세차게 물이 흐르는 깊고 긴 산골짜기와도 닮았다. 그런데 무언가 까만 점 같은 것들이 물길에 섞여 동동거렸다. 몸을 수그려 자세히 보니, 그 물길과 물길 주위로, 미처 비를 피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 개미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빗물에 흙이 쓸려 개미집이 잠겨버린 것이다. 개미들은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그 아등바등하는 몸짓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소리보다 절박해 보였다. 순간 나는 사회시간에 배웠던, 자연재해가 닥쳐서 수난을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속이 탔다.

어떤 작은 나뭇잎에는 개미 대여섯 마리가 올라타, 사정없이 물살에 떠밀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배를 탔다가 갑자기 태풍을 만난 사람들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어떤 개미는 얼굴을 내밀고 앞다리를 위로 뻗은 채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갔고, 그리로 수많은 개미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거나, 빗방울에 맞아 죽고 말았다.

나는 개미를 잡아 건져 올려주려고, 몇 번이고 손으로 물길을 막고, 물을 떠내려 했다. 그러나 내 손에 잡히는 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흙탕물뿐이었다. 나는 개미들을 뒤로한 채, 그 긴 물줄기가 시작되는 위쪽으로 성큼성큼 자리를 옮겼다. 아, 맨 위 경사가 완만한 곳과 가파른 곳의 경계에, 빗물 때문에 생긴 큰 물웅덩이가 있었다. 꼭 백두산 천지 같았다. 역시 그 웅덩이에서 물이 밑으로 쏠려가 물줄기가 되어 흘러내리는 거였다.

나는 내가 개미들의 하느님이 되어서, 하늘에서 개미 사회를 내려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로 저런 개미 사회의 홍수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닥쳤으면 어떨지, 상상도 하기 전에 기분이 끔찍해졌다. 만약 내가 떠내려간대도 할 수 있는 것이, "으악~ 사람 살려~!" 하고 외치는 것밖에, 개미랑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개미들이 떠내려가는 골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