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손톱

2009. 6. 27. 09:11일기

<검은 손톱>
2009.06.25 목요일

1교시 미술 시간, 아침에 학교 앞 문구사에서 산 붓펜을, 나는 요리조리 돌려가며 살펴보다가, 선생님께 여쭈었다. "선생님, 이 붓펜은 연필을 잡는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나요? 붓을 쥐는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나요?" 하니까, 아이들이 먼저 "이 바보야, 당연히 연필을 잡는 방법으로 쥐어야지!" 했다.

모두가 붓펜으로 화선지 위에 수묵담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화선지 밑에는 선생님께서 나누어주신, 옛날 우리나라 화가들이 그린 붓 그림이 인쇄된 종이를 깔았다. 그리고 화선지에 비추는 그 그림을 붓펜으로 정성스럽게 따라 그리면 되었다.

나는 분명히 김홍도 아니면 신윤복 화백이 그렸을 법한, 광대놀이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것은 긴소매 옷을 입은 광대가, 왼쪽 팔은 머리 위로 쳐들고, 오른팔은 앞쪽 어딘가를 향해 슈웃~ 곧게 뻗고, 한쪽 다리는 발가락으로 땅을 딛고, 한쪽 다리는 무릎을 구부려 가슴까지 든 특이한 자세로 춤을 추는 모습이었다.

붓펜으로 선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그림을 스르륵 부드럽게 따라 그리니, 무언가 말할 수 없는 포만감이 밀려왔다. 그림을 다 따라 그린 후에도 나는 아직 붓펜을 놓고 싶지가 않았다. 어딘가에다가 붓펜을 쓰고 싶어 온몸이 간지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붓펜을 두리 둥실 허공에 휘두르다가, 실수로 내 손톱에 콕! 하고 찍었다. 그 순간 내 눈이 반짝 트이면서 '그래~ 이거야!' 하고, 손톱에다 붓펜을 칠하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붓펜을 잡고 왼손 손톱을 칠할 때는, 조각가가 된 기분으로 섬세하게 하나하나 부드럽게 칠했다. 그런데 왼손으로 오른손을 칠할 때는 조준이 잘 안돼서 땀이 뻘뻘 났다. 붓펜 끝을 오른손에 어질어질 조준하다가, 손톱을 튕겨 맞고 오른쪽 볼에 슥~ 그어지기도 했다. '아고, 못하겠구나!' 하는데 마침 쉬는 시간이 돼서, 뒤에 앉은 세인이에게 칠해달라고 부탁했다.

세인이는 흔쾌히 내 오른 손톱을 붓펜으로 삭삭 꼼꼼하게 칠해주었다. 그리고 덤으로 팔에 영어로 롤리팝이라는 글자도 새겨주었다. 진희를 비롯해 보는 아이마다 "어우, 뭐야? 끔찍해~" 하며 눈썹을 찡그렸고, 다른 반에서 놀러 온 준열이는 "어? 너 손톱 다쳤냐?" 하였다. 하지만, 난 두 손을 쫙 펼치고 내 손톱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며, '흐흐~ 언젠가 내가 쓸 소설에 검은 손톱이란 제목을 넣어야겠어!' 생각하며 웃었다.

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