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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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아, 쏘지 마!
2009.09.26 토요일 우리 가족은 광릉 수목원 근처에 있는 분재 공원에서 산책했다. 막 분재로 꾸며진 비닐하우스를 구경하고 나올 무렵이었다. 코스모스가 잔뜩 피어 있는 정원에서, 돌탑을 기지 삼아 영우랑 지구 정복 놀이를 하며 뛰놀다가 엄마, 아빠를 뒤쫓아 가려는데, 갑자기 큰 벌 하나가 내 주위를 붕붕 돌다 사라졌다. 나는 순간 놀랐다가 휴~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내 오른쪽 목 뒷쪽이 간지러우면서 뭔가 척~ 붙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하며 온몸이 떨렸다. 나는 뒷목에, 물컵에 맺힌 물방울 같은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돌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단지 끌껍 끽~ 침을 반 정도만 삼키며, 두 눈을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굴렸다. 그리고 머릿속엔 끔찍한 기억이 ..
2009.09.28 -
내게 너무 먼 팽이 장난감
2009.01.10 토요일 꿀꺽,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스텐드 불을 켠 뒤, 후들거리는 손으로 스르르 책상 서랍을 열었다. 구석에 껌같이 접어 숨겨놓은 비상금 만 원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산책하는 척 집을 나섰다. 바깥공기는 건조해서 코끝이 말랐고, 조금 걸으니 얼음 조각이 온몸에 박히는 것처럼 차가왔다. 내가 아침 일찍 도망치듯 밖으로 나온 이유는, 오래전부터 꼭 갖고 싶었던 팽이를 사기 위해서다. 그것도 엄마, 아빠 자고 계신 틈을 타서 몰래! 그 장난감 팽이는 아이들이 흔히 가지고 노는 것인데, 난 그게 재미있어 보였고, 갖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안된다고 하신다. 무슨 팽이가 7천 원 씩이나 하냐며, 도대체 정신이 있느냐고 펄쩍 뛰다시피 하셨다. 그리고 그런 ..
2009.01.13 -
빨간 비가 내리는 언덕
2008.10.19 일요일 오후에 엄마랑 영우와 산책하러 나갔다. 영우가 숙제로 나뭇잎을 모아가야 한다며 아파트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을 하나, 둘 주웠다. 나는 "아! 예쁜 나뭇잎이 많은 곳을 알고 있어! 따라와!"하고는 어제 친구들과 처음 가 보았던 5단지 산책로를 찾아 달려갔다. 우리는 놀이터를 따라 내려와 차들이 달리는 아파트 앞 도로를 건너, 아파트 단지 마지막에 붙어 있는, 509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돌계단을 날듯이 뛰어올라갔다. 잃어버린 보물을 찾기라도 하려는 기세로! 계단을 올라가니 구불구불한 산책로 양옆에 아담한 풀밭이 펼쳐져 있고, 빨간 나뭇잎들이 장미꽃 이파리처럼 여기저기 부슬부슬 떨어져 있었다. 영우는 "우와~! 진짜 색깔이 예쁘다!" 하고 좋아하며 풀밭에 코를 박듯 엎드려 나뭇잎을..
2008.10.21 -
나뭇잎 나라
2007.11.04 일요일 날씨도 좋고 햇빛이 아까워 우리 가족은 물과 김밥과 새우깡을 싸가지고 서둘러 공순영릉으로 갔다. 공순영릉에 가니 많은 가족들이 가을을 느끼려고 우리처럼 나무 냄새도 맡고 돗자리를 펴고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공순영릉 안의 산책 길은 노랑, 주황, 갈색, 황금 빛 나뭇잎들이 카페트처럼 촤르르 깔려 있었는데, 어떤 곳은 발이 움푹 빠지도록 쌓여서 혹시 수렁이 아닐까 겁이 나기도 하였다. 겁이 없는 영우는 온 공원 안을 내 세상이다 하고 벼룩이처럼 폴짝 폴짝 뛰어다녔다. 두 팔을 양 옆으로 날개처럼 펼치고 "부엉 부엉!" 외치며 뛰어다니는 영우의 모습이 숲의 왕자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그 모습이 부러워 아픈 내 신세가 처량하게만 느껴졌고, 피톤 치드라도 마음껏 들이마시자고 코로 ..
2007.11.07 -
2006.08.02 토스트 아저씨
2006.08.02 수요일 나는 아침 산책을 하다가 공원 입구에서 토스트 파는 트럭을 발견하였다. 마침 배가 고파서 햄치즈 토스트를 주문하였다. 그러자 토스트 아저씨는 네모난 철판 위에 빵을 얹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뒤집었다. 햄 두 겹을 빵 사이에 끼우고 그 밑에는 양상추를 깔고 위에는 치즈를 얹어 주었다. 토스트를 만들고 있는 아저씨의 얼굴에는 폭포처럼 땀이 흘러 내렸다. '이런 더운 여름에는 토스트 장사보다 아이스크림 장사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200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