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6. 02:08ㆍ일기
<북경여행을 앞두고>
2014.08.06 수요일
'여행'이란 두 글자는 얼마나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인가? 언젠가부터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걸 좋아하는 나의 내향성과 어디 놀러 가기에는 부담이 되는 우리 집의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몇 년간 여행이란 단어를 써 볼 기회가 없었다.
지난 7월 말, 친할아버지, 할머니 생신 때 대구에 내려갔다가, 생신 축하하는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당장 전화로 중국행 비행기를 예약하셨다. 할아버지께서 우리 가족 네 명과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 총 여섯 가족의 북경여행을 예약 상담하는 동안 나는 그 옆에서 기분이 얼떨떨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시는 데다 그 고민과 애증을 항상 격한 말투로 풀어내셔서 듣고 있자면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전화 예약을 마치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상우, 영우, 제대로 해외여행 못 갔다는데, 너희 가족이랑 여행하는 것도 처음이고 내가 기력이 있을 때 더 늦기 전에 해야지, 이게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고, 내 무리를 한다... 우리나라 좁은 땅을 벗어나 넓은 땅을 경험해보면 느낌도 다른 거라~"
이렇게 해서 8월 7일, 이제 몇 시간 뒤면 비행기 안에서 내 생일을 맞게 될 것이고 아직 실감이 안 난다.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에는 여행이라는 말이 낯설게 입력되었고, 가장 최근에 떠났던 여행은 중3 때 갔던 수학여행이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안 갈려고 했던 것을,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는 여행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아빠의 즉흥적인 드라이브로 아주 멀리까지 나갔던 것이지만... 텐트를 둘둘 싸들고 동해로 서해로, 특히 안면도로 많이 갔던 기억이 난다. 아, 또 중1 겨울방학 때, 친가 친척들이 전부 모여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갔었지. 카페 일을 하셨던 부모님은 함께 가실 수가 없었고, 우리라도 해외여행 경험을 만들어주려고 우리만 보내셨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 허전하게 남은 일본 여행의 기억은 생생하다.
배를 타고 갔었는데 식구들이 다 자고 있을 때 파도가 엄청나게 크게 쳐서, 배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창문에 바닷물이 닿았던 게 기억난다. 또, 가족들이 모두 잠든 버스 안에서 영우랑 나만 코를 창에 붙이고 창밖을 뚫어지게 내다보았었는데, 어릴 때 즐겼던 '포켓몬스터' 게임에 나오는 단순한 뾰족한 원기둥 모양의 나무들이, 실제로 모든 숲과 산을 메우고 있음에 놀랐던 게 기억난다.
예전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은 당장 여행 준비를 해야하는데, 무엇부터 해야할 지 모르겠다. 당장 내가 챙길수 있는 건 잊어버리고 있던 여행에 대한 설레임 밖에 없는 것 같다. 좀 걱정도 되지만. 나는 중국에 대해 동경심과 함께 두려움도 가지고 있다. 공산주의에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우리나라의 50배 정도 되는 크기에, 급격한 발전으로 빈부격차는 우리나라보다 더하고, 주로 매스컴으로 본 낙후된 곳의 시민의식은 중국을 안좋게 기억하게 하는데 한몫했다. 그런데 정작 꺼려지는 건 성조가 있는, 중국말 특유의 호통치는 것 같은 어투다.
어차피 집을 떠나 한번도 안 가본 타지로 먼길을 떠나는 것은 두려움을 동반할 수 있으니까 크게 개의치 않으련다. 난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때론 살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움을 느낀다. 몇시간 뒤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우리집으로 오신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우리 집을 방문한 것도 이게 처음 있는 일이다. 자고 내일 이른 아침 출발할, 낯선 북경으로의 여행이 할아버지 덕분에 금전적인 부담을 덜게 되어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여름방학에 새바람을 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