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북커스, 홍대 북 콘서트

2014. 7. 5. 14:54일기

<호모북커스, 홍대 북 콘서트>

2014.07.05 토요일


7월 3일, 4일, 연달아 <상우일기> 출간을 응원하는 행사가 열렸다. 행사의 주인공은 나였지만, 두 행사의 분위기가 정말 색달라 내가 주인공이란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멋진 자리였다.


3일 저녁, 7시 반에는 종로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호모북커스 도서관의 주인, 김성수 목사님께서 사회를 보시고 20여 명의 독자분들이 함께 모여 <저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나는 행사 전 청소년센터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목사님의 오두막처럼 작은 도서관에도 가 보았다.


목사님은 정기적으로 호모북커스 도서관 모임을 열고, 평소에는 좋은 책을 찾아 방방곡곡 온 서점을 찾아다니는 그야말로 책 읽기에 푹 빠져 사는, 꼭 대학생처럼 외모도 젊은 분이셨다. 난 그래서 더 위축되었는지 모른다. 목사님의 안내로 출판사 대표님과 실장님, 그리고 엄마와 함께 도서관을 돌아보는 내내, 귓가에 병아리 심장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다시 청소년복지상담센터로 돌아와 1층 마당에서 살구를 따 먹었다. 1층은 회의실 마당으로 난 창문을 전부 열고 마당에다 의자를 가지런히 놓아 행사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정원의 살구 숲과 7월의 무성한 나무 그늘이 푸른 담벼락이 되어주었다. 3층 텃밭에도 올라가 주황색 방울 토마토를 몇 알 따 먹었고, 센터장님께서 선물로 직접 줄기에 억세게 매달린 오동통한 가지 4개를 끙~ 하고 따주셨다. 청소년복지상담센터는 주택가의 일반 주택을 리모델링한 건물인데,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작은 숲 같았다.


도시를 멀리 벗어나지 않아도 맑은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어쩌면 내가 독자로서 있어야 어울리는 자리에 저자가 되어, 나보다 한창 나이 많은 누나뻘, 어머니뻘, 어머니와 함께 온 귀여운 초등학생까지 귀한 독자분들을 만났다. 목사님은 긴장되어 표정 변화가 없는 내게 "기말고사는 잘 봤어요?" 하는 질문으로 나에게 간간이 쓴웃음을 짓게 하셨고, 독자분들은 내게 물은 질문의 답을 듣기 전에 틀려도 좋으니 다 좋아요 하는 너그러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기분이 이상하게 점점 편안해졌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들이 어느 한 소년의 평범하고 설익은 이야기를 그토록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을까? 정원의 나무와 풀들도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저자와의 만남 시간 위에 소리 없이 여름밤이 내릴 무렵, 목사님의 새 책 소개와 더불어 조용한 박수로 행사를 마쳤다. 세계적으로 600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 명작 '학교의 슬픔'이란 책을 소개하실 때 <상우일기>와 참 비교되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사인회 시간에는 주로 어머니들께서 자녀들에게 줄 사인을 부탁하셔서, 난 '돈이 아까우니 재미없어도 읽어주세요.'라고 사인하고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한분 한분 인사를 드렸다.


센터장님께서 뭔가 아쉬운 듯 사무실로 들어가 USB를 세 개나 챙겨오셨다. 가지나물도 사진 찍어 보여주라 하셨다. 어느 여자 독자분은 초콜릿 시리얼을 선물하셨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아까 왔을 때처럼 북인더갭 출판사 식구의 차에 올랐다. 나는 차에서 "오늘 저 괜찮았나요?" 하니 운전을 하시는 대표님께서 "은근히 중독성 있는 걸, 자꾸 더 듣고 싶더라~" 하며 신 나 하셨고 실장님은 "상우 오늘, 너무 멋있었어! 최고였어요!" 하고 어린이처럼 좋아하셨다. 나는 그제야 긴장이 스르륵 풀리며 벽에 몸을 기대어 생수를 마셨다.






4일 저녁 8시, 불타는 금요일에 걸맞은 공연이 홍대 킹어브블루스 2층 공연장에서 열렸다. 사실 <상우일기> 출판 축하를 빙자한, 홍대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인들의 초특급 공연이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이북콘서트는 부모님이 홍대 예술인들과 맺은 인연으로 이루어진 뜻깊은 이벤트였다. 전에 홍대에서 부모님의 카페가 철거당할 위협에 놓여있을 때, 우리 가게에서 공연을 열어 힘을 북돋아 주었던 음악인들이 다시 의기투합하여 만든 공연이고, 그 선두에는 카즈 고영철 기자님이 서 계셨다. 당시 카즈 기자님께서  '<상우일기>가 책으로 출판되면 꼭 북 콘서트를 열겠습니다!' 했던 약속이 짤없이 지켜진 의리의 공연이기도 했다!


그런데 출연하는 음악인들이 너무 빵빵해 <상우일기>가 주인공이 되는 게 좀 싱겁지 않았나 싶다. 사실 <상우일기>나 상우일기에 관한 정보를 알고 온 관객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불타는 금요일이지 않은가? 공연 중간에 카즈 기자님과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카즈님이 책을 홍보하려 애써주셨고, 구석진 객석에 앉아 공연에 심취해 계시던 북인더갭 대표님이 나오셔서, 상우일기를 출판하게 되어 행복하다는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간간이 질문도 받았다.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있나? 피부관리는 어떻게 하나? 저처럼 소심한 성격은 햇빛을 안 본다고 대답해놓고도 참 멋쩍었다. 뒤늦게 아빠가 일하고 계시는 시민단체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회원분들이 장사를 마치고 오셔서 책을 몇 권 사고 음료도 사 주셨다.


나는 북 컨서트 내내 마음이 들떠있었다. 그건 멋진 음악이 어색한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의 심금을 울리는 소리, 핏줄을 세우는 래퍼 루피의 강렬한 힙합,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서 꿈을 꾸는 것처럼 자유롭고 몽롱한 이호의 노래,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예술이 되는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막 나가는 소름 돋는 풍자 퍼포먼스, 라이브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풀밴드를 거느린 루빈의 마법 같은 음악에 압도당하고, 마지막 요조의 공연은 오랜만에 시원한 여름 바닷가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어느새 나 자신도 북 콘서트의 이유가 책의 출판을 축하하기 위한 거라는 걸 까먹어버리고, 6인 음악가의 환상적인 음악에 취해 헤어나올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