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14. 22:08ㆍ일기
<박원순 시장님께 드린 선물>
2014.06.14 토요일
몸살이 심하게 나 조퇴하고, 병원 가서 주사를 맞은 게 어제 일인데 당장 지금 그 몸을 이끌고 쌩쌩한 척, 박원순 시장님을 만나려니, 내 몸의 저 안쪽에 갇혀있는 내가 데굴데굴 구르며 발광을 하는데, 겉으로 나오는 웃음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은 시장님께, 내가 쓴 책을 선물로 드리려고 약속한 날! 재선된 지 얼마 안돼서 무지 바쁘실 텐데도 시간약속을 해주신 시장님과의 만남을 놓칠 순 없다. 나는 2년 전 중학교 2학년 때, 블로거 간담회를 통하여 시장님께 즉흥적으로 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시장님의 집무실에는 도서관처럼 책이 많았기 때문에 어린 학생인 내게 책 한 권, 즉석에서 뽑아 선물하는 것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고 시장님의 서재를 내심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늘 내가 시장님께, 내가 쓴 책 <상우일기>를 직접 선물하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나는 시장님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동안 대기실에서 안경을 과감하게 벗어버렸다. 몸에 열이 있어서 안경을 쓰면 머리가 지끈거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시장님 방에 들어가자, 내 몸 안에서 떼굴떼굴 구르던 짐승 같던 나도 얌전해졌다.
오랜만에 만난 시장님은 2년 전에 뵈었을 때보다 작아져 계셨다. 사실 시장님은 그대로일 테지만, 내가 2년 동안 키가 많이 컸고, 요 몇 주 동안 지방선거를 치르시느라 시장님의 얼굴에 약간 힘든 여파가 남아 보였다. 그러나 천만 시민을 거느린 책임감이 시장님의 작은 체구에서 느껴졌고 시장으로서의 위엄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으셨다. 시장님은 끔뻑 인사하는 나를 보고 잠깐 멈칫~ 놀라시더니 "상우, 키가 많이 컸구나~!" 하며 손을 잡아주셨다.
나는 기념으로 시장님과 사진을 찍고 회의하는 넓은 책상에, 나와 우리 가족이 시장님과 마주앉아 내 책을 놓아두고 이야기를 꽃피웠다. 시장님은 "야, 상우야, 고맙다. 잘 읽어볼게, 대단하다, 대단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책을 내다니~!"하시며 부모님께도 "안 먹어도 배부르시겠습니다!" 하고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시원한 차를 내주시며 마냥 벙글벙글 웃던 비서실 여직원분께서도 한마디 거드셨다. "거기 책 잘 만들어내는 출판사예요. 옛날에 창비에서 근무하시던 분이 운영하는 출판사랍니다."
"오, 그래, 그래서 이렇게 표지도 예쁘구나~" 시장님은 <상우일기>를 촤르르 펼쳤다가 책을 닫았다가 다시 넘겼다가 어루만졌다 하면서 책을 가만 놔두지 못하셨다. 그러다가 책 안쪽 첫머리에 내가 쓴 친필사인, '끝없이 구르시는 시장님께는 어떤 이끼도 들러붙을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못 본 척, 크크~ 웃음을 참으셨다. "세상에, 남들은 평생 책을 한 권도 못 내는 사람이 많은데 이렇게 어린 나이에..." 시장님의 들뜬 목소리에 함께 자리한 자문관님과 직원분도 활짝 웃으며, 머리를 끄덕끄덕 맞장구를 치셨다.
나는 가뜩이나 몸에 열이 있는데, 확확 더 열이 달아올라, 쑥스러워서 낮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는 목쉰 앵무새가 되어버렸다. 아빠가 "시장님, 칭찬은 그만하고 상우 책 나온 기념으로 덕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하시니까 "에~ 그러니까 이게 계속 덕담이지 뭐예요? 그래, 글이 제일 중요한 것이죠! 신언서판! 상우는 벌써 키도 이렇게 나보다 훨씬 크지 않니? 건강하고! 그리고 글을 잘 쓰니 판단력도 좋을 것이고... 고 1때 벌써 작가의 길을... 상우야, 나중에 혹시라도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다면, 나도 꼭 불러주렴! 거기 아는 사람 20명 정도 부를 수 있는 걸로 아는데, 나도 불러주면 좋겠다! 지팡이 짚고 갈게~!" 하셨다.
"혹시 나중에 정치하는 건 아니니?", "에, 정치에는 관심 없고요, 아무래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하니까 창작활동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자 시장님은 "그렇게 부정하지 말려무나, 시장이 뭐 별거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내가 어렸을 때, 시골 촌놈이 책 보따리 들고 완행열차 타고 고생하고 다니면서 공부할 때만 해도 서울 시장이 될 줄 꿈에나 생각을 했겠니?" 하고 말씀을 쏟아내시며, 특유의 구릿빛 피부에 진한 주름이 도드라지도록 허허실실~ 웃으셨다. 나는 서울 시장님이 아니라, 인자하고 경험 많은 시골 마을의 이장님을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이웃 마을 어린 학생이 책을 내니, 무조건 기특해서 신이 난 할아버지 같으시니 말이다.
내가 안경을 벗고 있어서 그런지 시장님의 둥글둥글한 얼굴에 구석구석 자리 잡은 주름살이, 꼭 푹푹 파인 데가 있는 산처럼 보였다. 이 주름 사이사이에 서울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대표자의 책임이 녹아있다고 말한다면 과장된 것일까? 시장님은 권위적이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줄, 너무도 잘 알고 계시는 분 같다. 지금 서울에 필요한 시장님은 권위의식과 고집으로 꽉 막혀, 시민 위에 군림하고 지휘하는 시장님이 아니라, 직접 소통하고 같이 가자고 손을 내미는 시장님이 아닐까? 나는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시장님이라면 어린 <상우일기>를 순수한 마음으로 느끼실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