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드리는 글

2014. 3. 7. 12:54일기

<부모님께 드리는 글>

2014.03.05 수요일


어렸을때부터 저는 늘 잠자리에 쉽게 들지 못했습니다. 자려고 누우면 별의별 생각이 머리로부터 빠져 나와 밤의 어둠 속에서 자유로이 유영을 합니다. 그 생각들은 때로는 터무니 없는 망상,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우, 철거농성자의 아픔처럼 현실적인 문제까지, 여러가지 주제로 밤마다 저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만 15세의 나이가 되어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요근래에 지독하게도 저의 머리를 헤집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나 회의는 처음 가져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번에는 노력하지 않는데서 오는 불안함과 자책감이나, 너무 배가 불러 인간사를 쉽사리 내려다 보려는 오만함에서 우러난 생각이 아닌, 이제는 정말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고민을 해야 하는 대한민국 고등학생으로서 가지게 된 생각입니다.


우주적인 진화의 지향점은 '좀 더 복잡하게!'라고 얄팍한 지식으로나마 알고 있습니다. 태초의 무에서 유가 생겨나고, 흩어지고 깨어진 입자들이 모여 별이 되고, 단세포 생물이 끝없이 진화하여 지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듯이,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변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다만, 이 진화의 지향점을 역행하는 것이 단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에서의 삶'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사람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연간 총 생산량 10위권이라는 이 경제대국에서는, 굳이 사람의 생애를 상상하는데에 힘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갈수록 획일적이 되어갑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와서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경악스러움이었습니다. 아직 다닌지는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학교가 학생들에게 원하는 것은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에 대한 강조와 주입이었습니다.


차라리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 개인의 가치판단에 기인한 성취와 인성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라는 거짓말로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저들은 극악무도하게도 학생들의 사족을 잘라내어 학교, 사회가 원하는 틀에 아이들을 끼워 맞춥니다. 학생들의 삶의 최종목표는 그저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 순으로 요리의 조리법을 보고 만드는 것보다 간단하게 자신들의 삶을 고정시키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명문대의 상표가 붙은 품질 좋은 '상품'으로 제조하는데에 열을 올립니다.


좋은 상품에게는 끝없는 획일화 굴레의 강요와 자신들의 몸을 비틀어 가게 하는 '모범적인 사회인'이라는 틀로 내몰면서 또 한편으로는 '좀 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 편하자!'라는 미래 약속의 마약으로 그들의 각성을 무뎌지게 하고, 그들을 '사회적 낙오자'가 될 지 모른다는 걱정 속의 겁쟁이로 만들어 개인적인 삶의 열망과 자유의지를 원천봉쇄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명문대의 상표가 붙지 못할 상품들은 그저 불량품입니다. 그런 불량품들은 널리고 널려서 교실 공간만 차지한 채 방치되고 널브러져 있습니다.


그낭 널브러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쓰레기야' 같은 패배주의에 빠져 자신들과 같은 '불량품'들은 이렇게 널브러져 방치되는게 맞다고, 스스로를 포기하며 이런 삶의 획일화를 당연시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또 그들 나름대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제조과정을 알게 모르게 거치게 됩니다. 어쩌다 학교는 교육의 요람이 아닌 명품대학의 상표가 붙은 '성공한 삶'과 패배감에 빠져 사회체제의 부조리를 못보게 하는 '사회구성원'을 사육해내는 공간이 되었을까요?


공부는 재밌습니다. 새로운 것을 알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 속의 성취감은 그 어떤 행위에서도 얻을 수 없는 고유한 마약입니다. 그렇다면 공부의 본질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고, 더 나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의 자신을 거리낌없이 틀 속에 우겨넣어 상품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닌데도, 왜 공부를 가르치는 우리나라 교육계의 현장은 이토록 병이 든 제조회사로 전락 했을까요? 얇디 얇은 견문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나름의 분석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석유를 비롯하여 상품가치가 되는 자원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벌어먹고 살려면 땅을 파는게 아니라 자신들의 머리를 파내어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광복직후의 전쟁으로 파괴된 대지와 모자란 인력으로는 자급자족도 안되는 상황에서, '공부'는 성취감을 얻고 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도구가 아닌, 약해서 쓰러질 것만 같은 우리네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무기이며, 굶어죽는 국민들을 먹일 수 있는 유일한 생산수단이었겠지요. 이를 극복하려 애쓰는 눈물겨운 조상님들의 이야기까지는 좋았습니다.


다만, 나라의 높은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썩어문드러질대로 썩어버려서, 지금은 공부 꽤 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은 권력이 주는 떡고물에 환장해 스스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고, 대다수 시민들은 그들이 쳐놓은 사회의 틀에 걸려 상표가 씌워지고, 오랜 훈련에 걸쳐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당연하게만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교육'은 무시무시한 정치기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공'과 '실패'등 가치판단의 기준을 개인의 눈이 아닌 사회적 시선의 눈으로, 여의도에 또아리 튼 기득권 세력과 친일파 후손의 정부가 원하는 시각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장기간에 걸쳐 조립하니 말이지요.


뜬금없이 우리가 제품이 되고 삶이 획일화 되는 것에 대한 원인이 왜 기득권이냐? 친일파 정부냐? 물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목표가 좋은 대학에 들어간 후 좋은 기업에 들어가는 것만이 되어야, 친일파 정부와 손잡은 대기업이 자본을 쥐고서 연약한 노동자를 마구 착취해도 '대기업이 있어야 경제가 살지!'같은 광적인 신뢰를 국민들에게 심어놓으면 영원히 그 목숨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고, 언제나 자기들의 통통한 배에 기름칠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물론 우리 사회의 학벌위주 분위기나 입시 경쟁위주 교육도 썩은 교육계의 대주주이죠.


저는 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인 시선을 가지게 하려고 저를 교육시키는 사상의 학교는 다니기 싫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나를 이런 사회를 묵인하고 합리화 하는 멍청이로 만들고 좋은 상품으로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학교의 대외의 명예를 드높여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고통 받게 하는데 일조하려는 생각 뿐입니다. 그들은 날 자기문제를 세상 탓으로 돌리려는 겁쟁이로 매도할 것입니다. 정작 그들도 '지금 열심히 하면 미래에는...'하는 사회적 약속의 주문을 굳게 믿는 광신도일 뿐이니까요. 그런 학교는 가기 싫습니다. 심지어 6시에 일어나서 가야하는 학교는 더욱 말이지요. 출결은 사회적인 가치판단의 틀입니다. 그런 틀을 가지고 나를 재려는 대학은 가기도 싫습니다.


공부를 안 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저의 팔다리를 자르고 모범적인 사회인으로 만들려는 수단의 공부가 아닌, 배움에서 희열을 느끼는 공부를 갈망합니다! 지금 저는 당장 급진파 민주 인권투사가 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저의 이 생각이 젊음의 철없음, 부모님께서 품어주시는 안락하고 의무 없는 삶이 끝나는게 두려워서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도 수없이 가져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얻은 결론은 제가 문제를 느끼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럴땐 그걸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아직 어렸었고 순수한 의미에서 '학교'를 다녔을 때 배웠던 것으로, 이젠 어렴풋한 기억속에 남아있는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