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금엉금 거북이 마라톤
2011. 5. 19. 10:30ㆍ일기
<엉금엉금 거북이 마라톤>
2011.05.14 토요일
'덜컹딜킥~ 덜컹딜킥~' 흔들리는 지하철에 맞추어서 내 몸도 조금씩 흔들렸다. 내가 오랜만에 지하철 4호선 열차를 타고 있는 이유는 오늘 있을 마라톤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 씩 1,2,3학년 모두가 함께 마라톤을 한다. 선수들처럼 42km의 장거리를 달리는 게 아니라 7km만 달리면 되지만, 난생처음 그렇게 작정하고 많이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되었다.
어두운 지하철에서 대공원역 2번 출구로 나와, 집합 장소인 분수대 앞까지 왔다. 분수대에는 아무도 없고, 분수대 조금 뒤에 '청운 중학교 거북이 마라톤'이라고 쓰여진 큰 현수막 아래에, 우리 학교 체육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조금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왜 하필 거북이 마라톤일까? 나비 마라톤이나 치타 마라톤은 안되나? 그렇지만 거북이처럼 끈기 있는 동물도 아마 없을 거야. 10m 앞 가는데도 한 시간 이상 걸릴 테지만, 그래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거북이를 닮으라고 거북이 마라톤이구나! 제목 한번 기가 막히게 멋진 걸!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대공원 건물 화장실에서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몇 분 사이에 어마어마한 수의 학생이 모여 있었다.
머리 위에는 우리를 익혀버릴 듯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을 두고, 교장 선생님의 몇 마디 말씀을 듣고서 청운 중학교 학생 모두 힘찬 출발을 하였다. 나는 앞줄에 있었는데 뒷줄 아이들이 심하게 앞줄 아이들을 밀치고 나오는 바람에, 많이 휘청거리고 내 옆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어어~ 넘어지기도 하였다. 학생들이 청운 중학교 체육복을 입고 한 방향을 향해 달리는 모습이, 꼭 아프리카의 노을지는 황금빛 풀밭에서 얼룩말들이 마구 뛰어다니는 그림을 연상시켰다. 내가 누구인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달리기 전교 끝에서 1등은 예약하고 달렸던 사람인지라, 아이들과 어느덧 하나씩 멀어지고, 나는 거의 맨 끝에서 범수와 뛰었다.
선수들이 뛰는 거리의 7분의 1밖에 안돼서 만만하게 봤는데 '이거 완주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고, 6학년 때 읽기 책에서 나왔던 마라톤에 대한 글을 떠올리며 뛰었다. 마라톤의 거리는 1m라도 짧으면 기록은 인정되지 않지만, 거리만 기준 이상이면 상관이 없고, 지형과 날씨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가 오르막길을 뛸 때, 머리 위에서 노랗게 물든 해가 자외선을 터질듯이 내뿜고 있었다. 아직 뛴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조금씩 숨이 가쁘고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내 옆에서 뛰고 있는 범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 다 헉헉대고 낑낑거리면서 문을 빠져나가다가, 배에 문이 꽉 끼어 고생하는 사람처럼 끙끙거렸다. 범수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파란색의 시원해 보이는 음료수를 꺼내었다. 나는 문득 집합 장소에 내 가방을 놓고 온 것이 너무 원망스럽고, 내 목 안은 몇십 년 씩 비가 안 온 사막처럼 쩍쩍 마르고 침도 거의 말라가고 있었다. 이제 1분만 더 수분 공급이 안 되면, 길옆에 난 작고 더러운 물이 흐르는 개울에서 물을 들이켜야 할 것 같았다. 그때 범수가 파란색 음료가 찰랑거리는 병을 건네며 "상우야! 남은 거 너 다 마셔!" 하였다.
그동안 둘 다 달리는 데 너무 힘이 많이 들어서 말 한마디 하기 어려웠지만, 오랜만에 범수에게서 들은 말이 우거진 나무 그늘보다 더 상쾌하였다. 나는 너무 목이 막혀서 "응~!" 이 한마디만을 콧소리로 내고, 벌컥벌컥 내 목안으로 음료수를 쏟아부었다. 시원한 음료수가 다시 내 목 속의 황금빛 벌판을 휘날리게 하고 저수지에 다시 물이 차오르게 하였다. 나는 전 과목 100점을 맞은 것 같은 뿌듯함에 빠져서 행복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갔다. 마라톤을 하면서 말을 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범수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아이가 달리는데 에너지를 써서 가끔가다 아는 아이를 만나도 서로 마주 보고 헐떡일 뿐이었다.
이제 거의 다 왔겠지? 하는 생각을 할 무렵, 학부모님들께서 직접 안내요원으로 서 계셨다. 그리고 손에는 4분의 일이라는 끔찍한 말이 적힌 표지판을 들고 계셨다. 조금 절망스러웠지만 나는 이제 정말 거북이야, 느릿느릿 끈기있는 거북이! 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다 왔겠지? 이제 다 왔겠지? 보폭을 크게 벌려 한 걸음 한 걸음을 가다보니, 어느덧 다시 집합 장소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와 범수는 너무 기뻐서 '와아~!" 함성을 지르며, 마지막 힘을 다해 내달렸다. 비록 거의 꼴찌였지만, 완주하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완주를 하고 나니, 그동안 중간고사 때문에 괴롭고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크게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2011.05.14 토요일
'덜컹딜킥~ 덜컹딜킥~' 흔들리는 지하철에 맞추어서 내 몸도 조금씩 흔들렸다. 내가 오랜만에 지하철 4호선 열차를 타고 있는 이유는 오늘 있을 마라톤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 씩 1,2,3학년 모두가 함께 마라톤을 한다. 선수들처럼 42km의 장거리를 달리는 게 아니라 7km만 달리면 되지만, 난생처음 그렇게 작정하고 많이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되었다.
어두운 지하철에서 대공원역 2번 출구로 나와, 집합 장소인 분수대 앞까지 왔다. 분수대에는 아무도 없고, 분수대 조금 뒤에 '청운 중학교 거북이 마라톤'이라고 쓰여진 큰 현수막 아래에, 우리 학교 체육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나는 조금 엉뚱한 상상이 들었다. 왜 하필 거북이 마라톤일까? 나비 마라톤이나 치타 마라톤은 안되나? 그렇지만 거북이처럼 끈기 있는 동물도 아마 없을 거야. 10m 앞 가는데도 한 시간 이상 걸릴 테지만, 그래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는 거북이를 닮으라고 거북이 마라톤이구나! 제목 한번 기가 막히게 멋진 걸!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대공원 건물 화장실에서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몇 분 사이에 어마어마한 수의 학생이 모여 있었다.
머리 위에는 우리를 익혀버릴 듯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을 두고, 교장 선생님의 몇 마디 말씀을 듣고서 청운 중학교 학생 모두 힘찬 출발을 하였다. 나는 앞줄에 있었는데 뒷줄 아이들이 심하게 앞줄 아이들을 밀치고 나오는 바람에, 많이 휘청거리고 내 옆에서는 몇몇 아이들이 어어~ 넘어지기도 하였다. 학생들이 청운 중학교 체육복을 입고 한 방향을 향해 달리는 모습이, 꼭 아프리카의 노을지는 황금빛 풀밭에서 얼룩말들이 마구 뛰어다니는 그림을 연상시켰다. 내가 누구인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달리기 전교 끝에서 1등은 예약하고 달렸던 사람인지라, 아이들과 어느덧 하나씩 멀어지고, 나는 거의 맨 끝에서 범수와 뛰었다.
선수들이 뛰는 거리의 7분의 1밖에 안돼서 만만하게 봤는데 '이거 완주나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고, 6학년 때 읽기 책에서 나왔던 마라톤에 대한 글을 떠올리며 뛰었다. 마라톤의 거리는 1m라도 짧으면 기록은 인정되지 않지만, 거리만 기준 이상이면 상관이 없고, 지형과 날씨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가 오르막길을 뛸 때, 머리 위에서 노랗게 물든 해가 자외선을 터질듯이 내뿜고 있었다. 아직 뛴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조금씩 숨이 가쁘고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내 옆에서 뛰고 있는 범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 다 헉헉대고 낑낑거리면서 문을 빠져나가다가, 배에 문이 꽉 끼어 고생하는 사람처럼 끙끙거렸다. 범수는 메고 있던 가방에서 파란색의 시원해 보이는 음료수를 꺼내었다. 나는 문득 집합 장소에 내 가방을 놓고 온 것이 너무 원망스럽고, 내 목 안은 몇십 년 씩 비가 안 온 사막처럼 쩍쩍 마르고 침도 거의 말라가고 있었다. 이제 1분만 더 수분 공급이 안 되면, 길옆에 난 작고 더러운 물이 흐르는 개울에서 물을 들이켜야 할 것 같았다. 그때 범수가 파란색 음료가 찰랑거리는 병을 건네며 "상우야! 남은 거 너 다 마셔!" 하였다.
그동안 둘 다 달리는 데 너무 힘이 많이 들어서 말 한마디 하기 어려웠지만, 오랜만에 범수에게서 들은 말이 우거진 나무 그늘보다 더 상쾌하였다. 나는 너무 목이 막혀서 "응~!" 이 한마디만을 콧소리로 내고, 벌컥벌컥 내 목안으로 음료수를 쏟아부었다. 시원한 음료수가 다시 내 목 속의 황금빛 벌판을 휘날리게 하고 저수지에 다시 물이 차오르게 하였다. 나는 전 과목 100점을 맞은 것 같은 뿌듯함에 빠져서 행복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갔다. 마라톤을 하면서 말을 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범수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아이가 달리는데 에너지를 써서 가끔가다 아는 아이를 만나도 서로 마주 보고 헐떡일 뿐이었다.
이제 거의 다 왔겠지? 하는 생각을 할 무렵, 학부모님들께서 직접 안내요원으로 서 계셨다. 그리고 손에는 4분의 일이라는 끔찍한 말이 적힌 표지판을 들고 계셨다. 조금 절망스러웠지만 나는 이제 정말 거북이야, 느릿느릿 끈기있는 거북이! 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다 왔겠지? 이제 다 왔겠지? 보폭을 크게 벌려 한 걸음 한 걸음을 가다보니, 어느덧 다시 집합 장소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와 범수는 너무 기뻐서 '와아~!" 함성을 지르며, 마지막 힘을 다해 내달렸다. 비록 거의 꼴찌였지만, 완주하였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이렇게 완주를 하고 나니, 그동안 중간고사 때문에 괴롭고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크게 내려놓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