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귀한 손님

2011. 1. 13. 09:01일기

<꽃보다 귀한 손님>
2010.01.09 일요일

교과부에 송고할 기사를 작성하려고 서울 국립과학관을 찾았다. 마침 할머니도 컴퓨터를 배우는데 숙제라며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하셔서 함께 길을 나섰다. 엄마랑 할머니랑 나는 갈 때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올 때는 버스를 탔다.

우리는 취재를 마치고 뿌듯한 기분으로, 과학관 앞에서 파는 붕어빵을 와작와작 과자 먹듯이 씹어먹었다. 너무 뜨거워 여기저기 팥을 떨어뜨리면서! 그리고 성대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기다리던 272번 버스는 곧 도착하였고, 우리는 버스 안으로 발을 동동거리며 쏙 들어갔다. 버스는 출퇴근 시간도 아니었지만,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할머니는 운전기사 아저씨 뒤편 셋째 자리에 앉으시고, 나와 엄마는 할머니 앞에 서서 덜컹거리는 버스와 함께 휘청거리면서 갔다.

덜컹거리고 사람 많은 이 버스의 풍경은 여느 버스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손님들의 마음을 끄는 것이 있었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추운 날씨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하며, 타고 내리는 손님들에게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특이하게 고래가 부우~ 소리 내는 것처럼 낮고, 또박또박 울렸다.

난 처음에 방송인 줄 알았는데, 운전기사 아저씨께서 손님에게 하는 인사말이었다. 아저씨는 버스를 타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또박또박 말을 건네며 일일이 인사하였다. 아저씨의 친절 덕인지 많은 손님이 웃으면서 내리고,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손님도 있었다. 할머니께서도 "아저씨가 참 친절하시구먼~!" 하고 구수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아저씨의 그윽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인상 깊었다. 아저씨의 목소리는 꼭 뉴스에서 가끔 나오는 북한 방송 아나운서의 말투에다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처럼 무겁고 그윽했다. 그렇게 아저씨 목소리와 휘청거리는 손님들을 가득 실은 버스는 신나게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급커브를 도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잡고 있던 기둥을 놓치고 넘어질뻔 했다. '어어어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는데, 간신히 엄마 팔을 꽉 잡아서 넘어지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보았는지 아저씨는 "죄송합니다! 조심하십시오, 꽃보다 귀한 손님!" 하는 것이었다. 꽃보다 귀한 손님이라! 나는 내 귀를 의심하였다. 아저씨는 목소리가 그윽하고 또박또박하여서, 나는 그런 말을 듣고도 혹시 녹음된 방송이 아닐까? 하고, 거울에 비친 아저씨의 얼굴을 광어가 눈을 흘기듯이 흘끔흘끔 살펴보았다. 아저씨는 중후한 목소리와는 달리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 같았다. 내 속을 알아차리기라도 하셨을까? 아저씨는 빙글빙글 웃음만 지을 뿐, 그 뒤로는 쭉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내가 내릴 때, "추운데 조심해서 가십시오, 손님!" 하고 다시 한번 또박또박 그윽한 목소리로 말해주셨다. 나는 뒤돌아보고 인사를 하려고 하였으나, 허겁지겁 내리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고, 할머니가 나 대신 "고맙습니다아~!" 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해주셨다. 버스에 내려서도 그 말은 내 머릿속을 울렸다. 나는 지금까지 버스기사 아저씨들은 조금 퉁명스럽고 거칠 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 아저씨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소중한 말 한마디로 사람 사이의 따뜻한 관계를 일깨워주고 있었다!

꽃보다 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