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문고에서 터진 코피

2011. 1. 4. 09:00일기

<영풍문고에서 터진 코피>
2011.01.03 월요일

"큼, 킁~!" 갑자기 코가 간지럽고 촉촉했다. 그리고 콧물 같은 것이 조금 새어 나왔는데, 콧물보다는 더 따뜻하고 더 끈끈하지 않고 물 같았다. 나는 왼손 검지 손가락으로, 물이 새는 것 같은 왼쪽 콧구멍을 살짝 훔쳤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진한 빨간색 액체가 왼손 검지에 묻어나왔다. 그리고 이내 방울방울 눈물처럼 흐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왜 코피가 나는 것일까?' 가장 먼저 이 생각부터 들었다. 어젯밤 새벽 3시까지, '아홉살 인생', '아르네가 남긴 것', '별을 헤아리며'라는 책을 재밌게 읽었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살짝 감기 기운도 있는 듯 피곤하고 몸이 매우 무거웠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책을 읽는 중에도 살짝 코피가 났었다. 나는 휴지를 찾았다.

하필 잠바 주머니 속에 구겨서 잘 다니던 휴지가 이럴 땐 안보일 게 뭐람? 나는 지금 엄청난 크기의 영풍 문고 안에서 어린이 칸 구석진 곳에 쭈그리고 앉아, 엄마와 멀리 떨어져서 따로따로 책을 읽는 중인데, 어디 가서 지혈할 휴지를 구하겠는가? 나는 처음에는 '곧 멎겠지!' 생각하면서, 그냥 떨어지는 피를 왼손으로 받으면서 계속 책을 읽었다.

그런데 멎기는커녕 피가 콧물처럼 질질 흘러 코와 입 주변, 그리고 왼손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처음에는 책에 빠져서 못 느꼈지만, 어느새 보니 손이 빨간 피로 색칠이 돼 있었다. 피는 더 나지 않았지만, 이런 상태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책이고 옷이고 다 팽개치고, 피가 고여 있는 왼손에서 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받치고, 화장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어기적어기적 똥을 눈 사람처럼 뛰어갔다.

중간마다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내 얼굴에 코피가 그렇게 많이 묻었나?' 하는 생각으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코와 입 주위가 피범벅이 되었고, 꼭 공포영화에 나오는 사람 잡아먹는 악마의 모습이었다. 나는 안경을 내팽개치고, 어푸어푸~ 미지근한 물에 세수하고 손에 묻은 피도 깨끗이 닦아냈다.

진했던 피는 그 색깔이 물에 섞여 꼭 토마토 주스에 우유를 탄 것 같이 연해져서, 하수구로 '꼬르르륵~ 꼬르르륵~!' 소리를 내며 빨려 들어갔다. 거울에 비춰보니 얼굴은 새사람이 된 것처럼 아주 말끔해져 있었다. 손도 마찬가지였다. 코피를 씻기 전에는, 꼭 한바탕 싸우고 돌아와 코피가 터지고 피범벅이 된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세수를 엄청나게 깨끗하게 해선지, 꼭 교회 신부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피를 조금 많이 흘려서일까? 살짝 어지럽고 머리가 아팠다. 피곤하고 몸이 무겁기도 하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단 생각에 불쌍한 생각이 들어 더 아픈 것 같았다. 하지만, 볼을 찰싹거리며 정신을 차리고, 찬물 세수를 한 번 더 하여서 다시 정신이 화들짝 깨었다. 나는 원래 책을 읽던 자리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지막으로 어깨를 들썩이고,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꼼짝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

영풍문고에서 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