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2011. 1. 10. 09:11일기

<가출>
2010.01.07 금요일

'끼이이익~!' 나는 쇳소리 나는 대문을 열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공기가 내 코와 입으로 빨려 들어왔다. 하늘은 바다보다도 더 새파랬고, 겨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햇빛이 쨍쨍했다.

아침부터 나는 답답했다. 방학 내내 추운 날씨가 이어져서, 꼼짝 않고 좁은 방 책상 앞에 앉아 책만 보았더니, 나의 몸은 에너지를 쓰지 못해 뻣뻣하고 근질거렸다.

엄마는 오늘따라 몸이 안 좋으신지, 표정도 안 좋고 잔소리만 하신다. 나는 엄마가 영우에게 잔소리하는 틈을 타서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런데 나는 도망치듯 나와서, 옷을 챙겨입고 나오질 못했다. 얇은 바지 한 벌에 내복을 안 입고 양말도 안 신고, 목폴라에다가 스웨터 하나를 달랑 걸치고 잠바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하늘색과 공기에 감탄하느라 추운지도 몰랐다.

나는 오랜만에 혼자 밖으로 나온 것이 너무나 기뻤다! 시원한 공기는 내 폐에 생기를 넣어주었고, 푸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게 나를 맞이해주었다. 날씨가 추운 것도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양주에서는 이것보다 몇 배는 훨씬 더 추웠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 지 막막했다. 이 동네에 아는 친구라도 있으면 놀러 가련만, 학교가 너무 멀리 있어 친구를 만날 수도 없고!

지하철을 타고 양주로 훌쩍 떠나볼까나? 아니, 지하철이 닿는 어디서나 내려 정처 없이 여행을 해볼까? 하지만, 교통카드를 미쳐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그냥 걸어서 서울시내를 활보할까? 하지만, 양말도 안 신어서 점점 추위가 파고들듯 느껴질 것이고, 혹시나 날이 저물면 저녁 길에 불량배들이 우글우글 거릴 것 같아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 생각은 가까이 있는 종로 도서관까지 가서 책을 읽다가 오는 것이었다.

나는 행선지를 정하자,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피노키오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몸짓을 우스꽝스럽게 하여 덜렁덜렁 신나게 뛰어다녔다. 단 꽁꽁 미끄럽게 얼어버린 얼음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는 며칠 전 얼음을 밟아 뒤로 넘어져, 5분 동안은 엉덩이가 아파서 움직이지 못한 적이 있다. 도서관 가는 길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계속 반복되었다. 올라갈 때는 동산을 올라간다는 기분으로 폴짝폴짝! 내려갈 때는 롤러코스터를 탄다는 기분으로 폴짝폴짝!

중간에 얼음을 한번 밟았지만, 운 좋게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힘차게 미끄러져 내렸다. 처음에는 추운 날에 집을 나온 내가 가엾게 생각되었지만, 걷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폴짝폴짝~ 팔락팔락~! 시원한 바람을 마주 보고 걸으니, 꼭 배낭을 메고 세상을 여행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나는 종로 도서관에 도착하여 2시간 정도 책과 멋진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엄마가 내가 양말도 안 신고 나간 걸 알면, 걱정하실 거야!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나는 깜짝 놀라며 집을 향해 서둘러서 헛둘, 헛둘! 하고 뛰었다. "상우야, 어디 갔다 이제 오니?" 엄마의 눈은 걱정스럽다 못 해 슬퍼 보였다. 영우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형아는 엄마가 잔소리하는 게 듣기 싫어서 가출했어요!" 그리고 엄마는 잠바를 들고 나를 찾아 동네를 몇 바퀴 헤매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