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막은 공

2010. 6. 22. 09:00일기

<처음으로 막은 공>
2010.06.21 월요일

요즘 나는 기말고사 기간인데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놀이터 축구장으로 향한다. 오늘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민석이, 재호와 축구를 하려고 뛰어나갔다. 영우도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형아, 나도 끼워줘!" 하면서 잽싸게 따라나섰다.

이번에 내가 맡은 역할은 골키퍼이다. 내가 운동을 아주 못한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4학년 처음에도 내 덩치만 보고 아이들이 골키퍼를 시켰는데, 되려 공을 피해서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골키퍼를 할 때마다 '이번에는 꼭~!' 언제나 굳은 각오를 하지만 번번히 실패만 했다.

이번에는 재호와 한팀이 되어서 나는 골키퍼, 재호는 미드필더다. 나는 옛날에 아빠가 쓰시던 장갑을 가져와 끼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건만 이번에도 번번히 공을 놓쳤다. 4학년 때의 악몽이 떠올라서일까? 움직이려고 했는데 차마 마음먹은 대로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시합은 재호의 활약으로 이겼지만, 나는 정작 1골도 막지 못했다. 나는 왜 이럴까?

한숨만 짓고 고개를 땅 쪽에 두고 일으키질 못하고 있는데, 뒤이어서 1 대 1로 골키퍼와 공격수로 나누어서, 골 확률과 수비 확률을 정하는 게임을 했다. 먼저 민석이가 골키퍼, 재호가 공격수를 했다. 재호는 10번 중에 8골을 성공했다. 민석이 다음 내 차례였다. 우리 중에 제일 잘하는 민석이가 그 정도밖에 못 막아내다니, 나로서는 더 풀이 죽을 수밖에...

그때 아빠의 말씀이 떠올랐다. '공을 잘 보고 끌어당겨서, 가슴으로 안아서 막는 거야!' 하지만, 그사이 재호가 벌써 1골을 넣으며 "파하~! 곌곌~!"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때, 왠지 재호의 얄밉게 웃는 얼굴을 얼빠진 얼굴로 바꿔버리고만 싶었다. 다음 차례 재호가 찬 힘찬 슛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공을 향해 팔을 뻗고, 엄마가 나를 안아주듯이 덥석 끌어안았다. 막은 것이다!

내가 공을 막다니 순간적으로 아주 놀랐다. 다음 차례 재호는 "흥, 아까전에는 운이었어!" 하면서 힘껏 다시 공을 찼다. 안으려 했지만, 공이 내 눈높이 정도로 높았다. 점프? 너무 늦었다. 순간적으로 나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며 앞으로 나가 재호의 공을 쳐냈다. 이번에는 운이 아니었다. 손목이 약간 저렸지만, 이제 공이 무섭지 않고 반가왔다. 공을 막아내는 순간, 내가 새롭게 깨어나는 순간임을 느꼈다.

그뒤로 계속 재호는 나에게 1점도 더 따내지 못하였고, 나는 10골 중에 9골을 막았다. 드디어 나도 축구에 자신감이 생겼다! 민석이는 눈을 높이 치켜뜨고 목을 올리면서 "네, 이번에는 한 손막기의 달인, 권상우씨를 만나보겠습니다! 리플레이! 권상우 선수! 공앞에서 오른 손을 살짝 올려 가뿐하게 공을 쳐냅니다!" 하고 계속 흥분했다. 내일 모레 1반하고 시합을 할 예정인데,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골키퍼를 도전해봐야 되겠다.

처음으로 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