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간 그릇

2008. 10. 15. 09:35일기

<금이 간 그릇>
2008.10.14 화요일

1교시, 선생님께서 "오늘 미술 수업을 야외에서 할까? 안에서 할까?" 하시자, 아이들은 귀청이 떨어져라, "야외에서 해요!" 하고 소리 질렀다. 해는 반짝 나고 하늘은 높고, 풀밭은 촉촉하고 나무는 울긋불긋 빛났다. 우리는 운동장 스탠드에 모여 앉아 수업 준비를 했는데, 꼭 높은 산에 올라앉은 기분이 들었다.

모두 준비해온 찰흙을 꺼내어 조물딱 조물딱 만들기를 시작했다. 옆에 앉은 석희는 찰흙을 가져오지 않아서, 선생님께서 한 덩이씩 나눠주신 것으로는 턱도 없이 모자랐다. 마침 난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넉넉히 준비해 온 찰흙을 석희에게 자랑스럽게 뜯어주었다.

난 크고 넓적한 국수 그릇을 만들었다. 크게 만들다 보니까 너무 얇아져서 잔금이 쩍쩍 나는 것이었다. 잔금에 자꾸 찰흙을 덧대니까 찰흙 낭비도 심했다. 투박한 국수 그릇을 만들고, 컵을 또 하나 만들었다. 찰흙을 길게 뱀 똬리처럼 계속 둥글게 이어 올려 모양을 내고. 지점토를 조금 띠어서 컵 뚜껑과 손잡이도 만들어 붙였다.

완성된 국수 그릇과 컵은 좀 뒤틀린 모양이었지만 그런대로 쓸만해 보였다. 스탠드 화단, 키 작은 나무 그늘에 작품을 말려 두고, 다 만든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따라 농구대에서 뛰어놀았다. 다시 돌아왔을 땐, 그릇이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교실로 가져올 때는 안 생겼던 금이 더욱더 뿌지지직 갈라지며, 더는 그릇이라기보다 똥 덩어리를 바짝 말려서 펴놓은 것처럼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계단을 오를 때도 계속 갈라지는 내 작품을 보고 김훈이가 "상우야, 내가 보기엔 니 그릇보다는 컵에 씌워진 뚜껑이 더 그릇 같아 보여!"했다. 결국, 그릇은 금이 가서 나무토막을 여러 조각 내놓은 것처럼 처참했고 컵은 엉성했다. 아무리 봐도 못났다. 선생님께 작품 검사를 받고, 나는 한동안 내 그릇을 노려보다가 "에잇~!" 하고 그릇의 양끝을 종이처럼 반으로 접었다.

컵도 하나로 뭉개버렸다. 뭉개버린 두 뭉치의 찰흙을 합쳐 '탕탕~' 책상에 내리쳤다 올리면서 자꾸만 둥글게 반죽했다. 동그란 공모양을 피자 판모양으로 납작하게 누르고, 다시 두툼하게 원통형으로 세워서, 윗부분에 연필로 구멍을 뽕 내었다. 그리고 구멍에 엄지손가락을 넣어 다시 주물럭거리며 컵 모양을 만들었다. 나는 3,4교시 시험지를 다 풀고 난 짬을 이용해서, 계속 이렇게 새 컵을 만든 후 사물함 위에 올려놓았다. 이번엔 금이 가지 않았고, 아까 것보다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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