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군, 이겨라!

2008. 9. 29. 09:36일기

<백군, 이겨라!>
2008.09.26 금요일

"뎅~" 하는 징소리와 함께 여자 청백 계주가 시작되었다. 우리 반은 백군 스텐드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판사들처럼 진지하게 청백 계주를 지켜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종알종알 말들이 많아지더니 여기저기 응원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초반에 백군이 이기다가 갑자기 청군 선수가 역전하자, 아이들의 반응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야! 그걸 역전당하면 어떡하냐?"하고 소리소리 지르고,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일어나 "백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하고 외쳤다.

그리고 벌써 이긴듯이 사기가 올라간 청군 응원단을 향해, 엄지손가락 두 개를 아래로 내려서 "청군 우~!" 하였다. 나도 따라 벌떡 일어나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불렀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 왔어요! 청군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거짓말! 백군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요!~"

앞에서 노랫말이 쓰인 공책을 높이 들고, 양옆으로 흔들며 선창하는 6학년 누나들을 따라 우리도 몸을 오뚝이처럼 흔들었다. 마침내 우리 반 계주 대표 선수 수민이가, 청군을 간발의 차이로 역전하기 시작하자 난리가 났다. "그래! 그거야!" 소리치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높이 흔들며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이들의 외침은 마른 풀밭에서 불길이 확 일어나듯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이성을 잃은 늑대들처럼 펄펄 뛰었다. 우리 반에서 제일 키가 큰 계주 선수 김봄이가 바톤을 이어받아 달릴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응원석에서 뛰어내려 와, 트랙 앞까지 바짝 달려가서 봄이를 응원하였다. "야! 김봄! 너처럼 다리 긴 애가 다리 짧은 청군 선수에게 지면 체면이 뭐가 되냐? 힘내라!" 나도 이성을 잃었다.

봄이는 엄청난 차이를 벌리며 학처럼 뛰었다. 운동장 중앙에서 스카우트 선생님이 마이크에 대고 뭐라 뭐라 하셨지만, 응원 소리에 파묻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계주가 우리 백군에 승리로 끝날 때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오~ 오오오오~!"하고 파도 타듯 한음으로 입을 모아 노래 불렀다.

운동회의 모든 종목은 연습했어도 응원만큼은 연습한 적이 없는데, 학교 운동장을 들었다가 놓을 정도로 정말 대단했다. 비록 작은 우리의 가을 운동회였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 응원 못지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응원할 때가 행복했지만, 응원이 끝난 후엔, 모든 것이 마법의 시간을 타고 날아갔다 깨어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조용해져서 오래오래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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