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끄는 수레

2008. 9. 3. 09:13일기

<태양을 끄는 수레>
2008.09.02 화요일

합동 체육 시간, 우리는 오랜만에 운동장에 나가 공 주고 받기를 하며 몸을 풀었다. 마침 하늘엔 구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가을 햇볕이 살을 태울 것 같은 기세로 이글거렸다.

선생님께서 이번 가을 운동회 때,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수레 끄는 단체 경기를 할 거라고 하시면서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먼저 우리 반을 여자, 남자 8명씩 4조로 나누고, 1조에 4명씩 또 앞조와 뒷조로 나눈다.

그리고 앞조와 뒷조에서 각각 수레에 탈 사람과 수레를 끌 사람을 1명씩 정한다. 이렇게 해서 2사람이 수레에 타면, 수레를 끄는 2사람이 함께 힘을 모아, 깃발 반환점을 돌아 다음 팀에게 바톤 터치하는 합동 경기다. 선생님께서 몇몇 여자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이게 하시고나서, 우리는 수레 탈 사람과 끌 사람을 뽑는데 돌입했다.

우리 조는 몸무게가 제일 가벼운 석희와 김훈이를 수레에 탈 사람으로 정했고, 동작이 빠른 성제와 몸집이 큰 나를 힘이 세 보인다고 수레 끌 사람으로 정했다. 나는 커다란 대야 모양에 바퀴가 달린 수레에 석희와 훈이를 태우고, 두 손으로 수레 줄을 꾹 움켜쥐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뛸 때 각오가 대단했다.

운동회 때 딱히 출전할 종목도 없는 판에, 이거라도 열심히 해서 덩치값이라도 해야지 하고, 뒤뚱뒤뚱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헉헉 숨소리가 귀에 들리도록 뛰었다. 뛰는 동안 뜨거운 햇살이 목덜미에 화살처럼 내려꽂혀서 괴로웠지만, 나는 태양신 아폴론이 끄는 마차를 떠올렸고, 내가 아폴론의 마차를 끄는 용감한 말이라고 상상하며 이야~ 하고 뛰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혼자 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덩치가 너무 큰지, 처음부터 옆에 성제가 설 자리가 부족한데다, 나만 혼자 열심히 뛰는 바람에 성제가 뒤로 밀려 줄만 간신히 잡은 채 어정쩡하게 내 뒤에서 따라 뛰는 꼴이 된 것이다. 이런, 이건 같이 뛰는 경기인데!

깃발 지점에 도착하여 수레에 타고 있던 석희와 훈이가 잽싸게 뛰어내리고, 성제도 다음 선수를 위해 빨리 줄 밖으로 빠져나왔는데, 나는 발끝에 줄이 엉켜, 어어~ 하고 허둥대며 풀다가 다음 수레꾼과 교체가 늦어졌다. 우리 뒤를 이은 팀은, 수레를 끄는 2명이 서로 뭔가 티걱태걱 다투며 달리다가 결국 우리 팀은 깨끗하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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