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장수 아저씨

2007. 11. 9. 23:08일기

<신발 장수 아저씨>
2007.11.07 수요일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나오니까 오후 5시쯤, 오늘의 마지막 해가 학원에서 공원에 이르는 길까지 찬란하게 빛을 펼치고 있었다. 나는 아폴론과 헬리오스의 태양 마차를 보는 듯한 느낌에 빠져 일광욕을 즐기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공원 입구 방범 초소 맞은 편 풀밭에서 매일 보던 신발 장수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그 아저씨는 주로 운동화를 팔았는데, 이름이 있는 좋은 브랜드 신발은 파란색 플라스틱 탁자 위에 진열해 놓았고, 이름 없는 신발들은 땅바닥에 진열해 놓았다. 그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신발을 팔게 된 지는 한 달도 넘었는데, 손님들이 신발을 사거나 기웃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장사가 안돼서 그러는지. 항상 일자로 다문 입에 싸늘한 표정의 신발 장수 아저씨는 주로 담배를 피우거나 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일로 어떤 손님과 흥정을 하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도 외국인과! 나는 처음에 우리 말로 대화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그것은 영어였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의 외국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아저씨의 영어 수준은 내가 듣기에는 대단했다. 발음도 정확했고, 내가 모르는 단어들도 술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평소에 그 아저씨의 행동이나 표정으로 봐서 많이 못 배웠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외국 손님도 방글방글 웃으며 대화에 빠져든 것 같았다. 어쩌면 그 아저씨는 공부도 잘했고 좋은 직업도 가졌었는데 중간에 뭔가 잘못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구나 하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그 아저씨의 아기와 아기 엄마를 위해서라도 신발이 잘 팔리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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