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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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감기
2008.03.26 수요일 3교시 수업을 앞두고 화장실에 갔다 오는데, 갑자기 머리가 쑤시고 속이 울렁거리면서 아침에 먹었던 주먹밥 냄새가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나는 속으로 '이제 소화가 되나 보네!'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교실 앞 복도에서 순간적으로 몸이 앞으로 수그려지면서, 입에서 하얀색 액체가 액! 하고 쏟아져 나왔다. 그러더니 그것은 복도 바닥에 떨어져 눈사태처럼 쌓였다. 나는 놀라 '어마,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뒤로 물러났는데, 지나가던 아이들이 똥 싼 괴물을 본 것 마냥 "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질렀고, 어떤 아이는 코를 막고 "아이, 더러워!" 하며 나를 피해 갔다. 나는 진땀이 나면서 목이 찔리듯 따끔따끔 아파졌지만, 더 괴로웠던 것은 아이들이 나를 못 견디게 더러운 눈으로 바라..
2008.03.28 -
날쌘돌이 청설모
2008.03.24 월요일 피아노 학원 가는 길에, 공원 입구에 늘어서 있는 나무 위로 무언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다. 그게 뭔가 가까이 가서 보려고, 나무 앞으로 바짝 다가가서 눈을 크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검은 비닐봉지가 매달려 마구 흔들거리는 모습인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털복숭이다! 그 털복숭이는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는데, 눈동자가 검다 못하여 푸른색으로 똘망똘망 빛났다. 순간 내 눈도 똘망똘망해지며 아기처럼 입이 샤아~ 벌어졌다. 지나가던 동네 형아가 "청설모다! 잡자~!" 하고 외쳐서, 나도 "어~ 안돼!" 하고 외치며 형아 뒤를 따랐다. 그러자 청설모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날쌔게 다른 나뭇가지로 뛰어넘어갔다. 우리가 청설모를 쫓아다니자, 지나..
2008.03.25 -
나의 첫 인라인 스케이트
2008.03.22 토요일 어제저녁, 난생처음으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갖게 되었다. 나는 내일이 생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떠서 밤새 잠을 설쳤다. 꿈속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가, 하늘로 날아올라 쌩쌩 달리다 몸에 불이 붙어버리기까지 했다. 아침 일찍 안전 보호 장치를 팔꿈치, 손바닥, 무릎에 단단히 매고, 아빠의 손을 잡고 공원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공원 트랙 평평한 곳에서 왔다 갔다 하며 균형을 잡았다. 아빠가 앞에 서서 두 손을 내밀어 잡아 끌어주셨다. 발 모양을 일직선으로 하고 서 있으면, 다리가 바깥쪽으로 점점 벌어졌고, 발 모양을 오므리면, 다리가 안쪽으로 모이면서 엉켰다. 그래서 쉬지 않고 발끝을 오므렸다 벌렸다 하는 연습을 했다. 나를 끌어주는 아빠 발보다 내 인라인 스케이트가 더 빨리 미..
2008.03.23 -
맘모스와 호랑이 놀이
2008.03.19 수요일 2교시 쉬는 시간, 나는 우석이를 만나러 옆반 4학년 3반 교실에 들러보았다. 거기서 우석이와 잠시 놀고 나가려는데,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우빈이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나를 덮쳤다. 우빈이는 양팔로 자기 어깨를 감싼 자세로 계속해서 내 어깨를 밀어붙였다. 나는 어어 밀리다가 맞서서 같이 밀어붙였다. 우리는 팔짱을 낀 상태에서 코뿔소처럼 씩씩거리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밀고 밀리다가, 우석이까지 합세하여 밀기 놀이에 열을 올렸다. 갑자기 복도를 지나가던 고학년 형아들이 우리를 보더니, 나와 우빈이에게는 "뚱뗑이!" 하고 외쳤고, 우석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뼈다귀!" 하고 외쳤다. 그 말을 들은 우석이는 화를 내며 "나 뼈다귀 아니야~! 얘들도 뚱뗑이 아니구!" 하고..
2008.03.21 -
급식 당번
2008.03.18 화요일 우리 반 아이들은 급식 시간이 되자,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급식 먼저 받기 전쟁(?)에 돌입했다. 먼저 손을 씻고 와서 자리에 앉아, 예쁘게 손 머리를 하는 모둠이 빨리 급식을 받기 때문이다. 한 명이라도 늦게 돌아오는 모둠은 전체가 나중에 받기 때문에, 아이들의 손 씻기 경쟁은 치열하다. 화장실 수돗가는 손 씻으러 온 다른 반 아이들까지 합쳐져 미어터지고, 어떤 아이는 손 씻으러 가는 척 나갔다가 그냥 들어오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유일한 손 씻는 곳인, 대걸레 빠는 수돗가에서 남들보다 여유롭게 손을 씻고 돌아와, 우리 4모둠과 함께 급식 당번 일을 시작했다. 준영이와 같이 교실 문 앞에 도착한 급식차를 스르르 교탁 옆으로 밀어 옮겼다. 곰돌이 무늬가 촘촘 박힌 급식 ..
2008.03.18 -
흔들다리 위에서
2008.03.16 일요일 새로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돌아오던 중, 너무 배가 고파서 길가에 보이는 식당에 내려 밥을 먹었다. 나는 국밥을 뚝딱 먹어치우고 먼저 밖으로 나와 서성거렸는데, 식당 뒷마당에 특이한 것이 있었다. 뒷마당 끝은 바로 절벽이고, 그 밑으로 운동장만 한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철판을 붙여 만든 기다란 흔들다리가 그네처럼 걸려있었고, 그 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식당 마당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신났다고 그 다리 위를 쿵쿵 뛰어다니며 왔다갔다 놀았다. 그러나 뛸 때마다 다리가 끼이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면서 마구 출렁거렸다. 나는 조심조심 발을 내밀어 다리 중간까지 걸어갔는데, 갑자기 나보다 쪼그만 아이들이 내 옆에서 일부러 팡팡 뛰었다. 그러자 다리가 끊..
2008.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