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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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소하는 날
2011.03.05 토요일 오늘은 내가 기대하던 우리 학교 대청소 날이다. 입학식 날, 내가 본 교실은 60년 동안 한 번도 청소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더러웠기에, 나는 이날을 벼르고 별렀다. 원래는 어제 대청소를 하기로 해서 청소에 필요한 준비물을 다 챙겨왔었는데, 사물함에 넣어놓고 오늘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각 학급 별로만 청소한다고 하고, 다음 주로 또 대청소가 미루어졌다. 하여튼 나는 오늘만큼은 1년 동안 내가 쓸 교실이니, 정말 열심히 쓸고 닦으리라! 마음먹었다. 청소를 마친 후, 반짝반짝 햇빛을 받아 윤이 날 교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렜다. 하지만, 1, 2교시에는 임원 선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3, 4교시에는 계속 봉사활동에 대한 동영상만을 보았고, 어느새 학교는 끝날 시간..
2011.03.08 -
전학 간 친구의 빈자리
2010.11.20 토요일 오늘은 민재가 전학 간 지 하루가 지났다. 어제 민재는 우리 반에서 6학년 때 처음 전학을 간 기록을 남겼다. 5학년 때까지 많은 아이가 전학 가는 것을 보며 울었던 나는, 이제 전학 가는 것이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모두가 민재와 인사를 나누며 울고 있을 때, 나는 사실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슬프지도 않고 실감이 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은 민재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나는 민재의 뒷자리에 앉았는데, 앞에 민재가 없으니 무언가 한구석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수업 시작할 때도, 회장인 민재를 대신해서 부회장인 은철이가 수업이 시작함을 알렸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이상해!", "어색하다." 하는 소리가 들렸..
2010.11.22 -
호수공원에서 만난 가을
2010.10.10 일요일 오늘은 일산에 있는 호수공원에 갔다. 나와 영우가 시험 준비 기간인데도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고 투닥투닥 다투니까, 엄마가 그 꼴을 못 보시겠다며 어디론가 가자고 하셨다. 엄마는 가을의 정취도 느끼고 야외에서 공부도 하자고 하셨다. 우리는 배가 고파 호수에 가까운 풀밭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엄마가 싸온 맛있는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주먹밥, 김밥, 할머니가 시골 산소에 갔다가 따오신 토실토실 익은 밤, 할아버지께서 사오신 호두과자, 사과, 참외, 엄마는 이렇게 많은 것을 싸서 오셨다. 우리는 먹이에 굶주렸던 다람쥐처럼 배가 터지도록 먹고, 주섬주섬 각자 배낭에서 공부할 것을 꺼내었다. 하지만, 공부를 얼마 시작한 지도 안 됐는데, 어느새 나는 자동으로 움직이는 바지를 입..
2010.10.14 -
허브 아일랜드의 수영장
2010.07.28 수요일 우리 가족은 허브 아일랜드에서 어린이 수영장이 8시까지 연다는 소식을 듣고, 아빠가 일을 빨리 마치시는 대로 서둘러 5시 반쯤 도착했다. 그런데 수영장을 지키는 아저씨께서 6시까지라고 하였다. 엄마, 아빠는 무척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다. "얘들아, 30분 만이라도 할래?" 나와 영우는 한꺼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깝기도 하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싶다는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간이 샤워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자마자 수영장으로 급하게 뛰어갔다. 영우가 "형아, 준비 체조를 해야지?" 하며 옆구리 운동을 하였다. 나는 "에이, 그런 걸 할 시간이 어딨어?" 하며 물에 젖어 아슬아슬하게 떨리는 계단 위에서 다이빙을 하였다. "퐁팡~!" 곧 수..
2010.07.30 -
감사했어요! 선생님!
2009.12.22 화요일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느덧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지도 1년이 다 되어 작별해야 하네요. 어제 제가 방학 중에 전학을 갈 거라고 했는데, 그래도 선생님과 2학기 수업까지 마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다행입니다. 이제 저는 전학을 가게 되어, 선생님과 복도에서 마주치는 것조차 못하겠지만, 그래도 선생님의 강렬한 인상은 영원히 못 잊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 중에, 제가 아팠던 시간이 너무 많아서 죄송하고 마음이 아파집니다. 제가 아파서 땀을 뻘뻘 흘리고, 교실이 흔들릴 정도로 기침을 해대며, 토까지 나오고 난리였을 때, 보다 못한 선생님께서는 저보고 조퇴하고 집에 가서 쉬라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조퇴가 잦은 게 싫었고, 공부가 하고 싶어서..
2009.12.23 -
끝장나게 추운 날
2009. 12.15 화요일 계단 청소를 마치고 교실을 나섰는데, 이미 아이들은 집에 가고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복도 창틈마다 차가운 바람이 위이잉 하고 새어나올 뿐! 바람은 복도를 물길 삼아 돌다가, 가스가 새듯이 흘러들어 복도 안을 불안하게 워~ 돌아다녔고, 나는 이 바람이 몸을 스르륵 통과하는 유령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을 때, 내 몸은 눈사태 같은 추위에 파묻혀버렸다. 나는 추위에 쪼그라든 몸을 최대한 빨리 일으켜 얼음처럼 딱딱한 신발을 후닥닥 갈아신었다. 정문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내려갈 때 내 몸은, 바람에 밀리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바람을 가르는 운석처럼 타타타타~ 굴러 떨어졌다. 그러자 정문은 괴물처럼 입을 쩍 벌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더 큰 바람을 쿠후우..
2009.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