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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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내리는 눈
2010.03.10 수요일 "후아~!" 도저히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파트 현관 밖의 풍경은 말 그대로 하얀 나라였다. 지금까지 나는 '이제 겨울은 끝났어! 지긋지긋한 눈이여! 이제 다음 겨울까지는 안녕!'하고 생각하며 완전히 봄을 맞은 기분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눈이 하룻밤 사이에 아무 데나 밟기만 해도, 허벅지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내리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학교 갈 길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제대로 된 길이 있기는 하였다. 앞서 간 사람들이 만들어 논 발자국 길, 계곡 사이 흐르는 작은 계곡 같은 길은, 그나마 눈을 밟지 않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방이 엄청난 눈이 쌓인 상태에서, 그 사이 작은 길로 그것도 미끄러운 길로 다니는 것은, 공중 줄타기처..
2010.03.11 -
모닝 빵
2010.02.06 토요일 "헉,헉,헉."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별나라 빵집 문을 열었다. 오늘은 토요일, 학교 급식이 나오지 않는 대신에 각자 집에서 간식을 싸가는 날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편찮으시고 시간이 늦어서, 별나라 빵집에서 모닝 빵을 사서 학교에서 먹기로 하였다. 빵집에는 온통 바삭바삭, 고소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우선 빵 진열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빵집은 꼭 낡은 벽돌집처럼 작지만, 요모조모한 빵들이 예쁜 집에 담긴 것처럼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어서, 튼튼한 헬스클럽 아저씨처럼 보이는 빵집 아저씨에게, "여기 모닝 빵 있나요?" 하고 물어보았다. 아저씨께서는 "음, 모닝 빵? 아직 굽는 중이야!"라고 하셨다. 나는 '조금 기다려 볼까?' 생각하다..
2010.02.08 -
다시 만난 학교
2010.02.02 화요일 오늘은 드디어 개학을 하는 날이다. 이번 방학은 유난히 길고도 짧았다. 오랜만에 아침 시간에 밖에 나와서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니, 폐가 갑자기 첫 숨을 쉴 때처럼 놀라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오후에만 나다니다가 갑자기 아침에 나와서 그런지, 바람이 볼을 찰싹찰싹 쓰라리게 하고, 옷을 두껍게 입었는데도 소매하고 품 안으로 바람이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5단지에서 나오니 꼭 동물들이 대이동을 하듯이, 삼숭초등학교 학생들이 한길로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은, 심장이 뛰도록 흥겹고 신이 났다. 바람이 매섭게 핏발이 선 날씨였지만, 나와 같이 배우러 가는 친구와 학생들이 있다는 생각에 기쁘고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 언덕 밑 교문에서는 1,2단지 쪽 횡단보도에서 건너오는 아이들..
2010.02.04 -
밥 두 공기
2009.11.24 화요일 오늘은 늦잠을 자서 아침밥을 거른 채 학교에 갔다. 그래서 오전 내내 배가 고팠다. 어제저녁에 먹었던 아주 질고 맛없던 밥도 옛날처럼 아쉽고 그리워졌다. 배가 한번 고프기 시작하니 뱃속에서 고골고골 앓는 소리가 나면서 배가 밑으로 폭삭 꺼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수업을 들으면서도 때때로 혀를 힘없이 쏙 내밀고, 손으로 꽈르륵거리는 배를 계속 사알살 문지르며 달래주어야 했다. 급식 시간이 되자 나는 오징어 볶음을 밥에 비벼서 푸바바밥!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웠다. 그러나 활활 타는 소각로에 휴지 한 조각 넣은 느낌이 들 뿐, 별로 배가 차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밥을 열 그릇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오늘은 수업 끝나고 1학년 6반 교실을 청소하는 날이었다..
2009.11.26 -
급하다 급해!
2009.09.17 목요일 학교 끝나고 돌아올 때 석희가 물었다. "상우야, 아까부터 왜 그렇게 똥 씹은 얼굴이니?", "으응~ 계곡에서 괴물이 나오려고 그러거든!", "그러면 우리 집에서 누고 가!" 나는 차마 석희네 집에서 실례할 수 없어서, 헤헤~ 사양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집에 오자마자 나를 기다렸던 가족들과 급하게 외출을 하느라, 화장실 가는 걸 잠시 잊어버렸다. 그리고 한 두 시간 쯤 흘렀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온몸이 배배꼬이며 배가 꽉 당겨오듯 아팠다. 나는 이예으호~ 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내가 계속 크게 다친 사람처럼 "으아으으!" 하고 탄식하자 가족들은 "상우야, 괜찮니?" 하고 물었다. 나는 "똥이 너무 마려워서 그래요! 아빠, 최대한 빨리 집에 가주세..
2009.09.18 -
태양이 돌아오면
2009.07.14 화요일 나는 요즘 태양이 없는 나라에 사는 기분이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보이는 옥수수밭이, 비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고, 꿋꿋해 보이던 나무들도 옆으로 힘없이 쓰러져있고, 비바람에 꺾인 나뭇가지가 전깃줄에 대롱대롱 걸려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엔 학교에서 돌아오면, 흠뻑 젖은 책가방에서 젖은 책들을 꺼내 마룻바닥에 쭉 늘어놓고 말리는 게, 급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겨우 마른 책을 가방에 넣고, 다시 콜록콜록거리며 비를 맞고 학교로 간다. 우산은 더 비를 막아주지 못해 쓸모가 없어졌고, 지난주 비폭탄을 맞은 뒤로 걸린 심한 감기가, 계속 비를 맞으니까 거머리처럼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우리는 온종일 내리는 쇠창살 같은 장맛비에 갇혀, 이 불쾌감과 ..
2009.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