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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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와 알탕
2011.09.08. 목요일 뚜르긱~ 꼬르긱~ 꼭 작은 애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목, 아니 목 안이 간지럽다. 장미꽃 가시가 박힌 것처럼 따끔따끔 쓰라리기도 하다. 푸울훡~ 푸훌웍~! 기침을 한번 하면 온몸이 놀이기구를 타듯이 흔들린다. 코에는 축축하게 기분 나쁜 콧물이 가득 차서, 숨을 쉴 수가 없어 입을 헤~ 벌리고 있다. 콧물은 코가 헐 때까지 풀어도 나오지 않는데, 콧속에 마른 코가 보금자리를 틀었는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이다. 가끔 기침에 딸려 노란색 가래가 나온다. 아침에 먹었던 것들은 이미 토해, 지금쯤은 신 나는 배수관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잠이라도 편히 잘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눕기만 하면 땀이 뻘뻘 나고, 폭탄이 터지듯이 기침이 터져 나온다. 정말 폐에 구멍이라도 난 ..
2011.09.10 -
끝장나게 추운 날
2009. 12.15 화요일 계단 청소를 마치고 교실을 나섰는데, 이미 아이들은 집에 가고 복도엔 아무도 없었다. 복도 창틈마다 차가운 바람이 위이잉 하고 새어나올 뿐! 바람은 복도를 물길 삼아 돌다가, 가스가 새듯이 흘러들어 복도 안을 불안하게 워~ 돌아다녔고, 나는 이 바람이 몸을 스르륵 통과하는 유령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을 때, 내 몸은 눈사태 같은 추위에 파묻혀버렸다. 나는 추위에 쪼그라든 몸을 최대한 빨리 일으켜 얼음처럼 딱딱한 신발을 후닥닥 갈아신었다. 정문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내려갈 때 내 몸은, 바람에 밀리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바람을 가르는 운석처럼 타타타타~ 굴러 떨어졌다. 그러자 정문은 괴물처럼 입을 쩍 벌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더 큰 바람을 쿠후우..
2009.12.16 -
우리 학교에 닥쳐온 신종플루
2009.08.27 목요일 "딩댕, 동댕~ 현재 관리사무소에서 긴급 속보를 알려 드립니다! 삼숭초등학교에서 첫 감염자가 발생했으니, 8월 27일 오늘부터 9월1일까지 임시 휴교에 들어갑니다!" 아침 7시 40분, 막 아침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을 때 들려온 안내방송이었다. 우리는 마치 전쟁이 났다는 방송을 들은 것처럼 얼굴이 하얘졌다. 그렇지 않아도 밖에는 비가 폭탄처럼 엄청나게 쏟아지고, 천둥도 쿠구궁! 쉬지 않고 내리쳤다. 가방을 싸던 영우는 겁먹은 얼굴로 내 옆에 바짝 붙었다. 나는 영우를 쓰다듬고, 친구 석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석희는 아직 자고 있었다. 또 친구 성환이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순간 더럭 겁이 났다. 오늘부터 신종플루 때문에 등교할 때, 교문 앞에서 체온을 재기로 했..
2009.08.29 -
흰눈과 쌀죽
2009.01.16 금요일 오늘 아침 나는 눈을 보지 못하였다. 밤새 아파서 끙끙 앓다가, 아침내내 시체처럼 늘어져 잠을 자느라 온 아파트 마당에 하얗게 눈이 온 것도 몰랐다. 나는 눈밭에서 뛰어놀지도 못하고, 뽀드득뽀드득 소금처럼 쌓인 눈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창문 밖을 슬프게 힘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어젯밤 늦게 배가 고파 고구마를 쉬지 않고 압압압 먹다가, 심하게 체해서 마구 토하고, 밤새 부르르 설사 소리로 화장실 안을 채웠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토를 많이 해서 몸 안에 수분이 다 뽑아져 나간 것처럼 가슴은 활활 타오르고, 머리는 나무 장작 쪼개듯이 아프고... 차라리 기절이라도 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울었다. 사람에게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몸속에서 번..
2009.01.17 -
해파리와 함께 수영을
2008.08.09 토요일 우리 가족은 1년 만에 기지포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왔다. 아빠와 나와 영우는 해수욕을 하려고 나란히, 바다로 이어지는 갯벌을 따라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썰물이 시작된 때라 바다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우리는 촉촉촉 발자국을 남기며, 바늘처럼 따갑게 내리꽂는 햇볕을 맞으면서 바닷가로 달렸다. 눈앞에 바닷물이 넘실대자 가슴 속이 펑 뚫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와 영우, 아빠는 동시에 멈칫하고 서서, 발끝 앞에 접시처럼 엎어져 있는 어떤 물체를 보았다. 보자마자 해파리란 걸 알 수 있었다. 해파리는 작은 미니 피자 크기였고, 투명한 우유빛이어서, 속에 박힌 4개의 파란 내장 기관 같은 원모양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나는 독성이 강한 붉은 해파리가 아닌 것에 일단 안심했고,..
2008.08.15 -
2007.05.10 소음
2007.05.10 목요일 음악 시간이 되어서 우리 반은 음악실로 향했다. 우리들은 지정됐던 자리에 앉았고 음악 선생님은 '하하하 송'을 틀어 주셨고 그 때부터 음악 시간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내 앞자리에 앉은 고기윤이 오늘은 더 심하게 고막이 터지도록 소리를 꽥꽥 질러대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고기윤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입은 아주 동그랗게 벌리고 얼굴은 주름지게 인상을 쓰고 눈은 실처럼 가늘게 뜨고 손으로는 허공을 마구 휘저어대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폭탄이 터지듯 아주 이상한 소리로 불러서 그게 비명인지 노래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아이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잠시 음악이 끝나 숨을 돌렸지만 다시 노래를 부를 때 아까와 같이 ..
2007.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