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눈과 쌀죽

2009. 1. 17. 09:08일기

<흰눈과 쌀죽>
2009.01.16 금요일

오늘 아침 나는 눈을 보지 못하였다. 밤새 아파서 끙끙 앓다가, 아침내내 시체처럼 늘어져 잠을 자느라 온 아파트 마당에 하얗게 눈이 온 것도 몰랐다.

나는 눈밭에서 뛰어놀지도 못하고, 뽀드득뽀드득 소금처럼 쌓인 눈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창문 밖을 슬프게 힘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어젯밤 늦게 배가 고파 고구마를 쉬지 않고 압압압 먹다가, 심하게 체해서 마구 토하고, 밤새 부르르 설사 소리로 화장실 안을 채웠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토를 많이 해서 몸 안에 수분이 다 뽑아져 나간 것처럼 가슴은 활활 타오르고, 머리는 나무 장작 쪼개듯이 아프고... 차라리 기절이라도 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울었다.

사람에게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몸속에서 번지는 강도만 다를 뿐이지, 고통은 비슷하다고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인간이 한없이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탐을 참지 못해 조금만 빨리 먹어도 이렇게 엄청난 탈이 나는데, 남의 것을 탐하려고 전쟁까지 일으키는 경우엔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

몸이 아프면서 이상하게 며칠 전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았던 장면이, 악몽처럼 떠올라 밤새 나를 괴롭혔다. 지구 반대편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불길에 휩싸인 마을과 어린 아이들이 참혹하게 죽은 모습이... 이것이 모든 생물의 제왕인 인간이 빚어낸 일인가?

만약 중동에도 오늘처럼 하얀 눈이 내려서, 어린이들이 솜털 같은 눈을 밟으며 좋아서 뛰놀고 있었다면, 그 앞에 대고 사정없이 폭탄을 쏘아 부을 수 있었을까? 잠에서 깨어난 나는 끙 무거운 머리를 창문에 기대고, 너무나 평화로운 바깥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는데, 뒤에서 엄마가 "상우야, 이리 와서 죽 먹어라!" 하며 나를 부르셨다. 눈처럼 하얀 쌀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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