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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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광장 위의 새털구름
2013.07.19 금요일 기말고사가 끝난 나의 하루 일과는 별 볼일 없다. 방학을 앞두고 친구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활기차다. 친구들끼리 단체로 반대항전 게임을 하러 우르르 피시방에 갈 때도, 나만 혼자 빠져나와 집으로 힘 없이 걸어온다. 집에 오면 굳은 얼굴로 방문을 닫고 커튼을 닫고 방을 어두컴컴하게 만든다. 그안에서 누에고치처럼 틀어박혀 있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다시 방에 틀어박혀 기면증 환자처럼 쓰러져 잠이 든다. 아무 일에도 의욕이 없고 무료하고 지루하며 생산적이지 못한 날들. 저녁에 엄마, 아빠가 집에 들어오셔서 잠깐만 바람 쐬러 가자고 하면서, 나랑 영우를 반강제로 차에 태워 어디론가 끌고 가셨다. "어디 가는 거예요?", "여의도에!" 차창 밖엔 장맛비가 잠간 멈춘 틈을 타, 바람..
2013.07.23 -
백군, 이겨라!
2008.09.26 금요일 "뎅~" 하는 징소리와 함께 여자 청백 계주가 시작되었다. 우리 반은 백군 스텐드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판사들처럼 진지하게 청백 계주를 지켜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종알종알 말들이 많아지더니 여기저기 응원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초반에 백군이 이기다가 갑자기 청군 선수가 역전하자, 아이들의 반응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야! 그걸 역전당하면 어떡하냐?"하고 소리소리 지르고,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일어나 "백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하고 외쳤다. 그리고 벌써 이긴듯이 사기가 올라간 청군 응원단을 향해, 엄지손가락 두 개를 아래로 내려서 "청군 우~!" 하였다. 나도 따라 벌떡 일어나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불렀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 왔어요! 청군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
2008.09.29 -
고향
2008.04.30 수요일 우리 가족은 저녁때 전에 살던 동네 할인점에 들렀다. 물건을 사고 나서 돌아오는 길옆에,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살던 아파트와 공원이 보였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폭포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손을 뻗으면 가 닿을 것 같은 집인데, 이제 다시는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내가 눈물과 콧물이 범벅 되어 숨을 헐떡거리자, 엄마, 아빠는 깜짝 놀라서 공원 한옆에 차를 세우셨다. 나는 차에서 내려 내가 살던 집 5층을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5층에 있는 우리 옛집 창문에서 보석처럼 불빛이 흘러나왔다. 내가 3살 때 처음 이사 와 8년 동안 살았던 집,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작고 낡고 담벼락 여기저기 구정물 같은 때가 번져 있지만, 그 집은 어둠 속에서 하얀..
2008.05.04 -
나의 첫 인라인 스케이트
2008.03.22 토요일 어제저녁, 난생처음으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갖게 되었다. 나는 내일이 생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떠서 밤새 잠을 설쳤다. 꿈속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다가, 하늘로 날아올라 쌩쌩 달리다 몸에 불이 붙어버리기까지 했다. 아침 일찍 안전 보호 장치를 팔꿈치, 손바닥, 무릎에 단단히 매고, 아빠의 손을 잡고 공원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공원 트랙 평평한 곳에서 왔다 갔다 하며 균형을 잡았다. 아빠가 앞에 서서 두 손을 내밀어 잡아 끌어주셨다. 발 모양을 일직선으로 하고 서 있으면, 다리가 바깥쪽으로 점점 벌어졌고, 발 모양을 오므리면, 다리가 안쪽으로 모이면서 엉켰다. 그래서 쉬지 않고 발끝을 오므렸다 벌렸다 하는 연습을 했다. 나를 끌어주는 아빠 발보다 내 인라인 스케이트가 더 빨리 미..
2008.03.23 -
인라인 스케이트 코치는 어려워!
2008.02.20 수요일 피아노 학원 마치고 영우와 함께 우석이네로 갔다. 우석이 남매가 며칠 전에 산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공원에서 연습한다는 것이다. 아직 인라인 스케이트가 익숙하지 않은 우석이와 서진이는 서로 손을 잡고 절뚝거리며 나타났다. 서진이는 넘어질까 봐 한쪽 손에 죽도를 짚고 있었다. 영우와 나는 우석이 옆에서 걸으며 우석이가 비틀비틀 넘어지려 할 때마다 팔을 잡아주며 공원 트랙까지 함께 걸어갔다. 그런데 공원 트랙까지 가는 동안 우석이가 자꾸 험한 길을 고집하여 애를 먹었다. 우석이는 벌써 인라인 스케이트 선수가 된 듯한 기분인지, 하늘로 목을 쭉 빼고 신이 나서 "와우~!"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옆에서 잡아주는 나는 우석이가 넘어질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하여 따라다녔다. 공원 트랙 ..
2008.02.21 -
살맛 나는 거리
2008.01.07 월요일 며칠 동안 지겨운 감기를 앓으며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피아노 학원에 가려고 오랜만에 공원 길을 나섰다. 공원 입구에서부터 공기가 다르게 느껴져 살맛이 났다. 겨울 나무들이 빼빼 마른 가지들을 달고 잎도 없이 쭉 늘어서 있었지만, 그 위로 안개가 틈틈이 내려앉아 그 어느 때보다 꿈에 젖어 보였다. 새들도 가끔 날아와 깍깍 울었다. 나는 에 나오는 주인공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첫 번째 모험을 겪었던 곳인 꿈의 나라가 바로 여기 아닌가! 하는 생각에 푹 빠져있다가, 사람들이 덜컹덜컹 약수물통 끄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수터에는 물을 마시는 사람, 물통을 씻는 사람, 물 받으러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도 그 틈에 끼어 서 있다가, 내 차례가 되자..
200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