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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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의 둘도 없는 친구
2008.05.21 수요일 이 이야기는 내가 책과 어떻게 만났고, 내가 책과 어떻게 친해졌으며, 지금은 어떤 관계인지 정리해 본 글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책은, 아주 얇고 그림이 있는 짧은 동화책이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을날의 단풍나무 사진처럼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내가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이나,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에, 엄마는 책을 읽어주셨다. 나는 엄마 곁에 딱 붙어 구름 침대에 누운 기분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이상하게도 친구가 없었다. 학교에 들어오면 책에서 읽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한 친구들을 만날 거라고 잔뜩 기대했는데, 막상 친구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책을 좋아해서 책에 나오는 인물들 이야기나, 대화를 흉내 내기 ..
2008.05.26 -
봄에 핀 첫 꽃
2008.03.28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잠깐 햇빛이 비추자, 아까워서 공원 놀이터에 들러 모래성을 쌓고 놀았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자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가고, 나도 집을 향해 달려갔다. 하늘에서는 작은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물벼락이 쏟아질 것처럼 어두침침해졌다. 나는 비에 홀딱 젖은 생쥐 꼴이 될까 봐 불안해져서 도망치듯 달렸다. 그러다가 바로 내 키보다 조금 큰 나무 옆을 지날 때, 뭔가 이상해서 잠시 멈칫하였다. 그 나무에는 가지 끝마다 노란 것들이 뾰족뾰족 달렸다. 난 그것이 처음엔 꽃봉오린 줄 알았다. 하지만, 꽃봉오리보다는 더 화사해 보였다. 가만 보니 그것은 꽃이었다. 바로 올봄에 우리 공원에서 처음 핀 꽃! 다른 나무들..
2008.03.31 -
진단 평가 문제 없어!
2008.03.11 화요일 오늘 1교시부터 5교시까지 내내 진단 평가라는 시험을 보았다. 갑자기 보는 시험이라, 공부를 하나도 안 하고 보는 바람에, 조금 긴장을 했는지 등에 오싹 한기가 느껴졌다. 내 주위에 있는 아이들 얼굴도 하나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시험 직전까지 를 읽으며, 또 다른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무렴 진단 평가가 디멘터(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들의 감옥인 아즈카반의 간수로, 거의 살인마에 가까움)보다 무서우랴? 그런데, 첫 번째 시험인 국어 과목부터 아주 쉬워서 '푸'하고 웃음이 나왔다. 모두 다 3학년 교과서에 나왔던 것들이라서, 시험을 친다기보다는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었다. 인사하는 기분으로 시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주위를 쓱 둘러보았더니 아이들 얼굴도 서서..
2008.03.12 -
2007.10.12 반지의 제왕
2007.10.12 금요일 중간 고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도 나는 기침을 쿨럭쿨럭거리며 휘어진 갈대처럼 고개를 숙이고 힘 없이 걸어왔다. 그 동안 떨어질 줄 모르는 감기와 시험 공부에 한없이 지친 나는 이제 노인이 된 기분으로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엄마가 "네 책상에 무엇이 있나 보렴!" 하셨을 때도 나는 시험이 끝났다고 책을 사 준 것은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러나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쪽지 한 장과 작은 검정색 복 주머니처럼 생긴 것이었다. '상우님, 블로그 대마왕이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대마왕이 되신 기념으로 반지를 드리겠습니다!' 라는 글을 읽기가 무섭게 나는 반지를 꺼내 보았다. 왕관 모양의 은빛 반지였는데 내가 원했던 금색은 아니었지만, 손가락에 끼고 높이 처들었더니 반지가..
2007.10.12 -
2007.09.29 사랑해, 친구야!
2007.09.29 토요일 2교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와 보니까 내 책상 위에 우리 반 아이들이 나에게 쓴 편지 모음 책 가 놓여 있었다. 1학기 말 박영은 선생님이 오셨을 때부터 시작했던 반 친구에게 편지 쓰기는 우리 반만 하는 사랑 나눔 릴레이 행사인데, 1번부터 끝번까지 차례대로 한 명씩 반 친구들 모두가 그 아이에게 주로 칭찬할만한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쓰면 선생님께서 묶어서 책으로 만들어 주신다. 나는 그 책을 열어보기 전에 가슴이 쿵덕쿵덕 방아질하듯 뛰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우리 반 친구들과 제대로 친하게 지내본 적이 없어서, 과연 아이들이 나에게 뭐라고 썼을까 기대도 되고 두렵기도 하였다. 그러나 편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그 동안 나의 걱정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봄..
2007.09.29 -
2007.06.04 지각
2007.06.04 월요일 아침에 눈을 떴더니 엄마가 졸린 목소리로 "아우, 상우야, 지각이다." 하셨다. 나는 너무 졸려서 그 소리가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뭐어?" 하며 시계를 보았더니, 8시 30분이었다. 나는 놀라긴 하였지만 그 때까지도 잠결이었다. 다급해진 엄마가 계속 "미안해." 하시며 나보다 더 허둥대셨다. 하지만 오히려 미안한 건 나였다. 어제 밤 엄마가 밤새워 작업하시는 동안 나도 그 틈을 타 몰래 책을 읽다 잠들었기 때문이다.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서 공원 길로 접어드는 순간 미지근한 온도의 끈적끈적한 바람이 불어 잠이 완전히 달아나면서, 나는 '에잇, 완전 지각이군!' 하며 난감한 기분과 후회가 뒤섞여 학교로 갔다. 오늘따라 학교 가는 길이 왜 이리 무거운지 마치 내가 피고가 되어..
2007.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