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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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에서 멈춘 시간들
2014.10.09 목요일 무시하려고 애를 썼다. 고등학교 1학년, 내 삶 살기에도 숨이 턱까지 차는 와중에, 주변 돌아가는 게 무슨 상관이냐, 성질 폭발하면 행여 다른 사람에게 모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다들 그냥 그러려니 넘기는데 나만 과민반응한다는 취급 받을까 봐, 애써 못 본 척 넘긴 날들이, 걷잡을 수 없는 추악한 소용돌이가 되어 나라를 휘감고 있다. 잔혹한 서북 청년단의 부활, 휴일 근로자의 휴일 추가노동 수당을 없애는 근로기준법 재정 안, 상가세입자의 권리금에 붙이게 되는 새로운 세금, 개인의 인터넷 이용까지 감시하는 검찰, 그리고 아직 사고의 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채 잊혀가는 세월호 참사까지... 어지럽고 불안하다. 아무리 봐도 정상답지 않은 상황들이 대기한 것처럼 줄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
2014.10.11 -
청운 중학교의 불티 나는 매점
2011.03.04 금요일 오늘은 입학식을 한지 3일째 되는 날이다. 그래서 아직 학교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진 못하지만, 학교 뒤편에 있는 매점에 나는 꼭 가보고 싶었다. 가끔 초등학교 때부터 중, 고등학교에 가면 매점이 있다는 소리에 솔깃했는데... 매점에는 값도 싸고 맛도 좋은 음식들을 팔아서, 학생들은 매점 음식을 먹는 걸 아주 즐긴다고 한다. 비록 영양가는 없을지라도! 나는 점심을 푸짐하게 먹은 후, 여기저기 산책하다가 드디어 매점에 들러보았다. 그런데 매점 주위에 무슨 큰일이 났는지, 이상하게 학생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그리고 매점 문앞에서는 한 아저씨가 효자손처럼 생긴 막대기를 들고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나는 무슨 큰 싸움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매점..
2011.03.05 -
나의 8강 응원기
2010.06.26 토요일 밤 11시! 결전의 날이다! 한국과 우루과이 선수들이, 경기장 한가운데에 비장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나는 긴장되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소파에 굳어버린 조각처럼 앉아 있었다. 우루과이 국가가 연주될 때, 제목이 '자유가 아니면 영광스러운 죽음을 달라!'여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경기가 시작되자 나는 엄마, 아빠 사이에 앉아, 엄마, 아빠 손을 한쪽씩 잡았다. 우루과이 선수가 공을 잡으면 긴장이 되어, 콧등에 주름을 잡고 엄마, 아빠 손을 더 꽉 끌어당겨 안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가 공을 잡으면, 콧등에 주름을 풀고 가슴을 휴~ 쓸어내렸다. 전반 전 10분쯤에 우루과이 골이 터졌을 때, 아빠는 "하아~!" 하시며 소파에서 마룻바닥으로 털썩 내려앉으셨다. 하지만, 나는 ..
2010.06.28 -
트라이더를 타고 날아요!
2010.04.25 일요일 조금은 늦은 저녁에 가족과 걸어나가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였다. 나는 시험공부에 매달려 있다가 오랜만에 트라이더라는 기구를 타고, 초저녁에 자유로운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트라이더는 킥보드 비슷한 형태인데, 발판이 양쪽에 한 개씩 있고 다리를 오므렸다가 벌렸다가 하면 그 힘으로 앞으로 나가는 기구다. 자전거도 인라인 스케이트도 썩 잘 타지 못하는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운동 기구였다. 나는 오랜만에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트라이더를 타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영우랑 나는 교대로 트라이더를 탔는데, 서로 한 바퀴만 한 바퀴만 하면서 더 욕심을 내다가, 꽥~하고 으르렁대며 싸우기까지 했다. 엄마는 화가 나서 트라이더를 압수하려 하셨다. 트라이더는 아..
2010.04.29 -
헌법재판소 판결처럼 우울한 날씨
2009.10 31 토요일 점심을 먹고 축농증 치료를 받으러 상가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제까지 아파트 단지마다 붉고 노란 나뭇잎이 땅바닥에 가득 뒹굴었고, 나뭇가지에도 빨간색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예뻤는데, 오늘은 다르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그동안 가을을 지켰던 풍성한 나뭇잎을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떨어내버렸다. 그래서 나뭇가지들은 바짝 말라서 쪼글쪼글해진 할머니 손처럼, 또는 X레이에 찍은 해골의 손뼈처럼 가늘가늘 앙상하다. 내가 조금만 건드려도 톡 부러질 것 같다.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었던, 가을의 빨간 축제가 매일 열리던 길목은 이제 끝났다. 내가 걷는 길은, 차가운 비가 투툴투툴 내리는 추억 속의 쓸쓸한 길이 돼버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산 속에서 햇빛을 못 받아 어..
2009.11.01 -
2007.10.22 빛을 쏘는 아이들
2007.10.22 월요일 4교시 체육 시간에 과학 시간 때 못했던 실험을 하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우리는 먼저 손거울을 가져온 사람과 안 가져온 사람으로 나누어, 3m 정도 거리를 두고 나란히 마주 섰다. 그런 다음 손거울을 가져온 사람이 거울을 자기 쪽으로 향하지 않게 반대 편으로 거울을 돌려 비추었다. 나는 낙건이 가슴을 향해 거울을 비추었다. 그랬더니 거울에서 광선이 나가듯이 노란 빛이 낙건이 가슴을 맞추었다. 낙건이는 그 빛을 지우려는 듯이 두 손으로 가슴을 박박 문질렀다. 어떤 애는 빛을 더 맞으려고 두 손을 펼치고 빛을 향해 뛰어다녔고, 또 어떤 애는 빛을 피하려고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빛을 쏘는 아이들은 사냥꾼처럼 한 명이라도 더 맞추려고 안달이 나서, 그야말로 레이저 쇼처럼 정신없는 수..
2007.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