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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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과서 받는 날
2009.12.19 토요일 아침에 중이염과 축농증이 다시 겹쳤다. 머리가 어지럽고 목이 붓고, 기침이 쉬지 않고 커헉~ 커어~! 터지면서, 결국 제시간에 등교를 하지 못했다. 학교에 간신히 전화를 하고 죽은 듯이 잠들었다가, 늦은 3교시 시작할 때서야 나는 학교에 도착했다. 내가 쉬지 않고 학교에 간 이유는, 오늘 새 교과서를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도 좋지만, 매년 새 교과서를 받는 일은, 큰 상을 받는 것처럼 가슴을 뛰게 했다. 나는 흐음 후, 흐음 후~ 가쁜 숨을 내쉬며, 계단을 올라 복도를 따라 절름절름 교실 앞에 도착했다. 목을 가다듬고, 장갑을 껴서 미끄러운 손으로 교실 뒷문의 금빛 문고리를 꽉 잡고 서서히 돌렸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빼끔 열렸다. 나는 그리로 ..
2009.12.21 -
찬솔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2009.11.20 금요일 1교시 수업 시작을 앞두고 주위를 한번 비잉 둘러보았는데, 찬솔이 자리가 오늘도 텅 비어 있었다. 어제 찬솔이가 결석했을 때는 '에구, 이 녀석 시험 점수 나오는 날이라 안 온 거 아냐?' 했는데, 오늘은 왜 안 왔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도 반바지를 입고 와서, 선생님께 제발 긴 바지 입고 다니라고 걱정을 들을 만큼 건강한 찬솔이가 어디 아픈 건 아닐까? 나는 내 짝 수빈이에게 "오늘 찬솔이, 왜 안 온 줄 아니?" 하고 물었다. 수빈이는 아무 말 안 했는데, 그때 나보다 두 칸 더 앞에 앉은 경모가 약간 찡그린 얼굴로 속삭였다. "찬솔이 할아버지, 돌아가셨어어~!" 나는 머리가 멍했다. 순간 1교시 수업 준비를 하며 평화롭게 술렁거렸던 교실 안이..
2009.11.21 -
화장실에서 읽은 시
2009.03.10 화요일 급식을 먹고 나서 나는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 학교는 층마다 화장실벽에, 액자에 시를 써서 걸어놓았는데, 난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골고루 돌아다니며 시를 읽는 걸 즐겼다. 단 2층 화장실은 한 번도 안 가봐서 오늘은 특별히 들러본 것이다. 세면대 위쪽에 붉은 보리밭 그림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시가 쓰여있었다. 나는 그 액자에서 가장 가까운 소변기에서 쉬를 하며 시를 읽었다. '여울에서 놀던 새끼 붕어, 다 커서 떠나고, 여울은 그때 그 또래 꼭 똑같네!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길, 아이들은 다 커서 떠나지만, 그 골목길은 그 또래 그대로이다!' 이 시를 읽고 나는 순간 멍해졌다. 뭔가 많은 느낌과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치 우리가 어릴 때는 엄마 아빠 품에 잘 놀다..
2009.03.11 -
세상의 여러 음악
2008.07.12 토요일 우리 가족은 저녁 7시 30분, 집 앞에 있는 고등학교 다목적 강당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보려고 급하게 움직였다. 오늘 공연은 양주시에서 주최하는 시민 음악회라고 들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건물 벽에 붙은 안내 화살표를 따라 강당을 찾아갔다. 나는 화살표 끝을 따라가면 음악을 타고 떠나는, 거대한 배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두근두근했다. 그런데 강당 안에는 음악회를 보러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강당 벽을 빙 둘러서 있었고, 강당 입구에까지 다닥다닥 붙어서서 공연을 기다렸다. 오늘 공연은 양주 시민들을 위한 무료 공연인데다가, 무더위도 식힐 겸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 같은데, 강당 안은 냉방 시설이 안돼 있..
2008.07.16 -
2007.09.20 굳은 아이들
2007.09.20 목요일 드디어 우리 반이 무대에 서는 차례가 되었다. 아이들은 연습을 한대로 무대에 있는 자기 자리를 찾아 섰다. 나는 맨 끝 줄 한가운데에 떨리는 마음으로 섰다. 7살 미술 학원 재롱 발표 때 이후로 친구들과 공연을 하려고 관객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선 게 처음이라 쑥스럽고 떨렸다. 전주가 라디오를 타고 흘러 나오자, 우리 3학년 4반은 약간 당황하여 처음 동작을 놓쳤지만 그런데로 잘 움직여 나갔다. 그런데 공연을 하면서 옆에 친구들을 슬쩍슬쩍 보니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있고 몸 동작이 작았다. 앞에 선 아이들도 몸 동작이 작고 뻣뻣해서 이건 공연이 아니라 배고픈 아이들이 단체로 나와서 구걸을 하려고 어설픈 몸짓을 하는 것 같았다. 앞에서 동작을 맞춰주시던 담임 선생님 얼굴도 점점 굳..
2007.09.20 -
2007.04.27 앞자리
2007.04.27 금요일 6교시가 시작됐다. 선생님께서는 "이제부터 자리를 바꿀테니 선생님이 부르는 사람은 교실 오른쪽 벽으로 나와 모이세요'" 하고 말하셨다. 아이들이 다 나오자 반대로 선생님이 지정해 준 자리에 앉는 순서가 왔다. 드디어 선생님께서 나의 자리를 지정하여 주셨다. 그런데 왠지 뜻밖이었다. 나는 키가 커서 뒷자리에 속하는 데 앉을 줄 알았는데, 앞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맨 앞자리에! 나는 선생님께서 왜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조금 뒤 선생님께서 나의 생각을 읽으셨는지 "상우, 앞자리에 앉아서 지난 일 반성 좀 해." 하셨다. 나는 드디어 기억했다. 원래 앞자리는 말썽을 많이 피우고 혼이 많이 나는 애들이 앉는 자리였다. 나는 "흐음" 하고 반성하는 마음을 ..
2007.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