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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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으로 빨래 널기
2013.08.16 금요일 여름이 막바지, 한낮의 기온이 33도가 넘는 더위 속에 나는 오늘도 윗옷을 입지 않은 채, 아래는 사각 팬티 차림으로 감질 나는 미니 선풍기 바람을 쐬며 집 안에 콕 틀어박혀 있다. 아무도 나를 보는 사람은 없다. 그때 엄마가 아래층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엄마는 보기만 해도 덥고 무거워 보이는 청바지 빨래 덩어리를 한꾸러미 안고, 잔뜩 인상을 쓰면서 말씀하셨다. "가서 널어!" 내가 군말 않고 아래로 내려가 엄마의 빨래를 받자마자 엄마는 쓰러지는 시늉을 하셨다. "잘 마르게 널어야 해~" 나는 물에 불어 축축하고 무거워진 빨래 덩어리들을 품에 안고, 2층 내방을 지나 어기적 어기적 다락방을 넘어 옥상으로 들어갔다. 이 옥상은 원래 다락방이었는데, 할머니께서 작은 텃밭을 가꾸려..
2013.08.17 -
윗몸을 힘껏 말아 올려요!
2009.10.20 화요일 오늘은 초등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기초체력을 테스트하는 체력장을 하는 날이다. 5교시, 우리 반은 유연성 테스트를 받기 위해, 남자 여자 키순으로 복도에서 줄을 맞추어 강당으로 향했다. 선생님께서 강당 문을 여시자, 벌떼가 벌집에서 한꺼번에 나오는 것처럼, 아이들이 좁은 강당 문 안으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갔다. 강당에는 이미 5학년 아이들 줄로 꽉 차 있었다. 우리 반은 강당 창문 벽 쪽에 두 줄로 딱 붙어 섰다. 무대에서 1반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고 "아직 2반이 안왔으니 시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셨다. 2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 아이와 제각기 가위 바위 보, 묵찌빠, 참참참 놀이를 하며 놀았는데, 무려 2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떠들고 노는 소리가..
2009.10.22 -
담뱃갑 만들기
2009.09.30 수요일 3교시 보건 시간, 지난 시간에 이어 담배에 대한 수업이 이어졌다. 보건 선생님께서는 텔레비전 화면으로, 우리나라 담뱃갑과 외국 담뱃갑 사진을 차례차례 보여주셨다. 우리는 그 둘이 얼마나 극과 극으로 다른지 몸서리쳤다. 우선 우리나라 담뱃갑에 그려진 그림은, 예쁘고 단순했다. 시원한 대나무 그림, 파란 동그라미 그림, 귀여운 고양이 그림! 이들은 오히려 몸에 좋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깨끗하고 신선해 보였다. 거기에 반해 외국의 담뱃갑들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담배 때문에 입을 벌린 채 파랗게 일그러진 얼굴로 사망한 시체 사진, 뇌에서 피가 입체적으로 콸콸 솟구치는 사진, 쭈글쭈글 썩어가는 폐사진! 담배로 파괴된 몸을 나타낸 그림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조차 저렇게 되지..
2009.10.02 -
흰눈과 쌀죽
2009.01.16 금요일 오늘 아침 나는 눈을 보지 못하였다. 밤새 아파서 끙끙 앓다가, 아침내내 시체처럼 늘어져 잠을 자느라 온 아파트 마당에 하얗게 눈이 온 것도 몰랐다. 나는 눈밭에서 뛰어놀지도 못하고, 뽀드득뽀드득 소금처럼 쌓인 눈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창문 밖을 슬프게 힘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어젯밤 늦게 배가 고파 고구마를 쉬지 않고 압압압 먹다가, 심하게 체해서 마구 토하고, 밤새 부르르 설사 소리로 화장실 안을 채웠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토를 많이 해서 몸 안에 수분이 다 뽑아져 나간 것처럼 가슴은 활활 타오르고, 머리는 나무 장작 쪼개듯이 아프고... 차라리 기절이라도 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울었다. 사람에게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몸속에서 번..
2009.01.17 -
나의 오른발
2008.12.18 목요일 힘찬이 교실을 마치고 선생님께 인사하고 가려는 시간이었다. 나는 혼자서 줄넘기를 더해보려고 무심코 줄을 넘었는데, 갑자기 오른발이 미끄덩하면서 발등이 접어진 상태로, 그만 강당 바닥에 탕~ 엎어지고 말았다. "끄아악~!" 엄청난 괴성을 지르며, 오른발을 붙들고 덫에 걸린 짐승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며 곧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보건 선생님께서 보건실로 가서 상처부위를 보자고 하셨다. 경훈이와 새은이가 두팔을 붙들어주었다. 그러나 오른발이 땅에 닿으면 도려내는 것처럼 아파서, 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내가 끓는 소리를 내며 헉헉거리니까, 보다 못한 새은이가 나를 번쩍 등에 업고 보건실로 데려갔다. 선생님께서 스프레이를 뿌리고, 붕대를 감아주실 때, 나는 입을..
2008.12.19 -
날씨가 추워져요!
2008.10.23 목요일 오늘,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놀랐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아파트 입구를 나서며 경비 아저씨께 인사를 할 때, 갑자기 매서운 칼바람이 내 몸을 쓱~ 휩쓸고 갔다. 나는 너무 추워서 온몸이 핸드폰 진동처럼 즈즈즈즉 흔들렸다. 그리고 '후~' 숨을 한번 내뱉었는데, 입에서 입김이 눈보라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속으로 '아! 그동안 그렇게 덥더니, 드디어 제대로 된 추위가 오는구나!' 생각했다. 깡 말라서 쪼글쪼글 비틀어진 나뭇잎들이 칼바람을 못 이기고 후두 두둑 떨어져 내렸다. 나는 다리를 오므리고 으으~ 하면서 걸었다. 영우는 아흐흐흐~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바람에 대항하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걸었다. 자꾸 바람이 얇은 잠바 옷깃으로 스며들어 와서, 뼛속까지 관통하고 빠져나..
2008.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