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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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발 도장 찍는 날!
2011.08.28 일요일 오늘은 나에게는 개학하고 맞은 2번째 휴일의 마지막 날이었고, 동생에게는 개학 전날로 밀린 방학숙제를 한번에 해결해야 하는 힘든 날이었다. 내가 영우만 할 때 주로 했던 방학 숙제는, 온통 빽빽하게 쓴 원고지 몇 장과 글투성이였는데, 영우는 종류도 다양했다. 시 모음집, 일기, 독서록, 환경 기록장, 건강 달리기 체크하기, 특히 4절 도화지에 가족들의 손도장, 발도장을 물감으로 찍어가는 숙제를 했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한 방에 네모나게 둘러앉았다. 가운데는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백지가 놓여 있었다. 나는 감격스러웠다. 사실 가족이 이렇게 둘러앉은 것도, 밥 먹을 때 빼고는 거의 없었다. 아니, 아빠는 얼굴 보기가 어려웠고 어쩌다 얼굴을 보아도 항상 피곤한 듯, 인상을 ..
2011.08.30 -
검은 손톱
2009.06.25 목요일 1교시 미술 시간, 아침에 학교 앞 문구사에서 산 붓펜을, 나는 요리조리 돌려가며 살펴보다가, 선생님께 여쭈었다. "선생님, 이 붓펜은 연필을 잡는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나요? 붓을 쥐는 방법으로 사용해야 하나요?" 하니까, 아이들이 먼저 "이 바보야, 당연히 연필을 잡는 방법으로 쥐어야지!" 했다. 모두가 붓펜으로 화선지 위에 수묵담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화선지 밑에는 선생님께서 나누어주신, 옛날 우리나라 화가들이 그린 붓 그림이 인쇄된 종이를 깔았다. 그리고 화선지에 비추는 그 그림을 붓펜으로 정성스럽게 따라 그리면 되었다. 나는 분명히 김홍도 아니면 신윤복 화백이 그렸을 법한, 광대놀이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것은 긴소매 옷을 입은 광대가, 왼쪽 팔은 머리 위로 쳐들고, ..
2009.06.27 -
아버지 발을 씻으며
2008.05.11 일요일 학교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노고를 덜어 드리라는 뜻으로 부모님의 발 씻기 숙제를 내주었다. 나는 목욕탕에 있는 세숫대야 중에 제일 큰 대야를 골라 샤워기로 한번 씻어내었다. 그런 다음 다시 샤워기를 틀어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물 온도가 아빠 발에 맞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아빠는 적당하다고 하셨다. 아빠는 발을 내밀기가 부끄러운 듯 머뭇머뭇 하시다가, 바지를 걷고 대야에 발을 담그셨다. 나는 비누에 물을 묻혀 손바닥에 칠하고, 박박 문질러 뽀글뽀글 거품을 내었다. 그리고 크림 같은 거품이 잔뜩 묻은 손을 아빠 발에 꼼꼼히 문질렀다. 마치 내 손이 붓이 되어 페인트칠을 하는 기분으로 부드럽게 아빠 발을 닦았다. 특히 무좀이 심해서 고생하셨다는 발가락 사이사이를 더 ..
2008.05.13 -
명필
2008.02.09 토요일 친가에서 돌아와 설 연휴 마지막으로 외가에 들렀다. 우리가 가자마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는 막내 삼촌에게 받은 시계 이야기도 하고, 저녁으로 할머니가 직접 키운 채소를 뽑아 비빔밥도 해먹고, 식혜도 먹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방에 들어가 어떤 종이 꾸러미를 가지고 나오셨다. 그리고 나와 영우에게 그걸 나누어주셨다. 그것은 코팅지와 한지였다. 먼저 코팅지부터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4학년이 되는 걸 축하한다는 말과, 격려하는 말, 그리고 미래에 내가 대학교 들어갈 때, 같이 손을 잡고 자랑스럽게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할아버지의 희망사항이 촘촘히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런 조언이 있었다. 1. 이제 4학년 고학년이 되었으니, 실력과 지식을 1등에..
2008.02.10 -
2006.12.14 명화 따라 그리기
2006.12.14 목요일 오늘은 2교시 쉬는 시간 때부터 명화 따라 그리기 시간이 있었다. 꼭 똑같이 그려야 하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바꿔도 되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좀 망설였다. 왜냐하면 그림 그릴 걸 생각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 그릴 걸 찾다가 고호에 를 그리기로 하였다. 나는 색깔이 번질 때마다 휴지를 그 부분에 대었다. 중간에 미선이가 자꾸만 물감을 빌려달라고 해서 귀찮기도 하였고, 붓을 헹구지 않고 색을 칠해서 이상하고 지저분한 색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자 마르기를 기다리면서 아예 해바라기를 직접 키워 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2006.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