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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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 버린 원고
2010.01.14 금요일 "어, 어, 아아악~!" 아래층 할머니 방에서 책을 읽다가, 몸을 풀려고 콩콩거리며 뛰고 있을 때, 엄마의 비명이 내 귓속으로 들어왔다. 정적을 깨버리는 소리는 왠지 불길했다. 나는 무언가 일이 났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위에서는 계속 "오오~!" 하고 엄마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계셨다. 나는 '엄마가 실수로 뭐에 베였나? 아니면 영우가? 오! 핸드폰이 터져서 집에 불이 붙었나?' 하는 오만 가지 상상을 하였다. 위층으로 급하게 올라가 보니, 엄마는 컴퓨터 의자에 앉아서 죽을상을 하고 계셨다. 무슨 사고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하고 물었다. 엄마는 몹시 흥분하셨나 보다. "이, 이게, 아~ 지, 지워졌어~!" 하며 어더더..
2011.01.16 -
여름 밤, 모깃불을 피워요!
2009.07.25 토요일 밤이 되자 텐트촌은 모기들이 나타나 시끄러웠다. 텐트촌 관리 아저씨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여기저기서 모깃불을 피우느라 바빠졌다. 나도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모기불 피우는 법을 익혔다. 텐트촌 가장자리에, 마른 소나무 잔가지가 짚더미처럼 수북이 쌓여 있는 데가 있다. 우리는 거기서 소나무 잔가지를 한 아름 주워들었다. 아빠는 우리 텐트 앞마당에 흙을, 꽃삽으로 싹싹 파서 둥근 구덩이를 만드셨다. 우리는 그 구덩이에 소나무 잔가지들을 넣었다. 그런 다음 아빠는 권총같이 생긴 화염 방사기의 끝을 잔가지에 겨냥하고 방아쇠를 딱~ 당겼다. 불은 한 번에 나오지 않고, 몇 번을 딱딱딱딱 하니까, 기다란 총 끝에서 시퍼런 불이 튀어나와 소나무 잔가지들을 감쌌다. 소나무 잔가지들에 불이 붙기 ..
2009.07.29 -
신나는 캠프파이어 - 상우의 야영일기 3탄
2009.05.27 수요일 5학년 전부 운동장 가운데 쌓아놓은 장작더미를 중심으로 모여, 크게 원을 만들었다. 이윽고 야영장 안에 있는 가로등, 야외무대 불빛이 모두 꺼지고, 우리는 어둠 속에 묻힌 고양이들처럼 눈만 반짝거렸다. 우리 반 반장이 5학년 대표로 나가, 끝에 불이 붙은 기다란 막대기를 깃발처럼 높이 들고, 원을 한번 돌다가 장작 앞으로 갔다. 그리고 막대기 끝으로 장작더미를 툭 건드렸더니, 순식간에 장작더미에 불이 파아~ 피어올랐다. 순식간에 내 눈에 불빛이 들어왔다. 마치 태양이 졌다가 다시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 "와아아~" 하품하는 것처럼 점점 입을 크게 벌리고 불꽃을 바라보았다. 불길은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올라 금방이라도 다른 곳으로 튀어 날아갈 것 같이 거세게 타올랐다...
2009.06.04 -
흰눈과 쌀죽
2009.01.16 금요일 오늘 아침 나는 눈을 보지 못하였다. 밤새 아파서 끙끙 앓다가, 아침내내 시체처럼 늘어져 잠을 자느라 온 아파트 마당에 하얗게 눈이 온 것도 몰랐다. 나는 눈밭에서 뛰어놀지도 못하고, 뽀드득뽀드득 소금처럼 쌓인 눈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창문 밖을 슬프게 힘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어젯밤 늦게 배가 고파 고구마를 쉬지 않고 압압압 먹다가, 심하게 체해서 마구 토하고, 밤새 부르르 설사 소리로 화장실 안을 채웠다. 제대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토를 많이 해서 몸 안에 수분이 다 뽑아져 나간 것처럼 가슴은 활활 타오르고, 머리는 나무 장작 쪼개듯이 아프고... 차라리 기절이라도 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울었다. 사람에게 큰 병이든 작은 병이든 몸속에서 번..
2009.01.17 -
백군, 이겨라!
2008.09.26 금요일 "뎅~" 하는 징소리와 함께 여자 청백 계주가 시작되었다. 우리 반은 백군 스텐드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판사들처럼 진지하게 청백 계주를 지켜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종알종알 말들이 많아지더니 여기저기 응원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초반에 백군이 이기다가 갑자기 청군 선수가 역전하자, 아이들의 반응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야! 그걸 역전당하면 어떡하냐?"하고 소리소리 지르고,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일어나 "백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하고 외쳤다. 그리고 벌써 이긴듯이 사기가 올라간 청군 응원단을 향해, 엄지손가락 두 개를 아래로 내려서 "청군 우~!" 하였다. 나도 따라 벌떡 일어나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불렀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 왔어요! 청군이 이겼다고 전화 왔어..
2008.09.29 -
어떤 소나무 - 상우가 쓴 이야기
2008.02.23 토요일 어떤 가난한 집에 소나무로 만든 책상이 있었어요. 그 책상은 집안에 있는 다른 물건들을 무시하고 깔봤어요. 그러면서 우쭐거리며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예전에 아주 좋은 곳에서 살았지. 이 작은 집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곳이었지. 나는 거기서 울창하게 다른 소나무들과 어울려 살았지. 키는 구름에 걸리고, 산속 제일 높은 곳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살았지. 우리 소나무 가문은, 보통 나무들과 다른 아주 귀한 가문이었어. 다른 나무들은 가난해서 나무들이 입는 가장 좋은 옷인 초록색 옷을 1년 동안 계속 입을 수가 없었어. 하지만, 우리 소나무들은 부자라서 일년내내 푸른색 옷을 입을 수가 있었지. 게다가 우리는 아침에 일어날 때, 새벽에 제일 먼저 만들어진 신선한 이슬을 마셨지. 너..
2008.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