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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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음악회 감상문
2011.08.18 목요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거셨다고 한다. 개학한 지 3일이나 지났는데도 아직 방학 숙제를 안 내서 꼭 가져오라고! 나는 '어마, 뜨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난처하였다. 우리 선생님은 음악 선생님이라서, 클래식이나 국악 연주회를 직접 보고 소감문을 한 편 써오라는 방학 과제물을 내셨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얼렁얼렁 미루다가, 내가 찜한 덕수궁에서 열리는 무료 재즈음악회 기한을 놓치고 말았다. 갑자기 음악 감상문을 쓰려니 막막했다. TV에서 보았던 에 대한 감상을 써볼까? 아니지, 클래식 음악이어야 한댔지? 나는 낯익은 한 편의 클래식 음악을 인터넷에서 찾아 들으며 즉흥적으로 감상문을 작성했다. 내일 선생님께서 이 감상문을 받아주실지 모르겠지만, 과제물에..
2011.08.21 -
봄에 내리는 눈
2010.03.10 수요일 "후아~!" 도저히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파트 현관 밖의 풍경은 말 그대로 하얀 나라였다. 지금까지 나는 '이제 겨울은 끝났어! 지긋지긋한 눈이여! 이제 다음 겨울까지는 안녕!'하고 생각하며 완전히 봄을 맞은 기분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눈이 하룻밤 사이에 아무 데나 밟기만 해도, 허벅지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내리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학교 갈 길을 찾아야 했다. 다행히도 제대로 된 길이 있기는 하였다. 앞서 간 사람들이 만들어 논 발자국 길, 계곡 사이 흐르는 작은 계곡 같은 길은, 그나마 눈을 밟지 않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방이 엄청난 눈이 쌓인 상태에서, 그 사이 작은 길로 그것도 미끄러운 길로 다니는 것은, 공중 줄타기처..
2010.03.11 -
시간이라는 선물 - 2008년을 보내며
2008.12.31 수요일 2008년이 몇 시간 안 남았다. 나는 두 손을 깍지껴서 머리 뒤에 베개 삼아 고이고, 몇 시간째 방바닥에 꼼짝않고 누워있다. 그러면 2008년에 있었던 일들이 오래된 영사기로 돌리는 영화처럼 천천히 차르르르~ 눈앞에 흘러간다. 어떤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쿡 터지고, 어떤 장면에서는 얼굴이 찡그려지고, 어떤 장면에서는 '아!' 하고 탄성이 나온다. 2008년은 나에게 너무 많은 추억을 선물하였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그냥 이렇게 옆에 있어주는 것밖에 없구나! 이제 다시는 못 볼, 내가 살아가는 시간 중에 어쩌면 가장 행복했던 해로 남을지도 모르는 2008년을 보내야 한다. 서서히 작동이 멈춰가는 배를 떠나, 새로 항해할 수 있는 배로..
2008.12.31 -
아이들 녹이는 아이스 홍시
2008.06.16 월요일 4교시 수업 시간이 끝나고, 급식을 먹기 전 청소하는 도중에, 우리 반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하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보았다. 오늘 나오는 급식에 아이스 홍시가 나온다는 거였다. 아이스 홍시?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나는 아이들이 그렇게 설레어 하는 아이스 홍시 맛이 어떨까 궁금해졌다. 급식을 받아보니, 아이스 홍시는 투명한 플라스틱 그릇에 오목하게 담겨 있었다. 토마토처럼 붉은색이었고, 탱탱한 모양에서 서리처럼 하얗게 차가운 기운이 샤아아 뿜어져 나왔다. 나는 젓가락으로 요놈을 콕 찔러 들어 올려서 한입 '스읍' 베어 물었다. 입 안에서 차가운 눈을 먹는 것처럼 사르르 녹아들더니, 온몸이 찌릿찌릿해져서 나는 "오오우!" ..
2008.06.18 -
봄에 핀 첫 꽃
2008.03.28 금요일 수업이 끝나고 잠깐 햇빛이 비추자, 아까워서 공원 놀이터에 들러 모래성을 쌓고 놀았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자 놀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가고, 나도 집을 향해 달려갔다. 하늘에서는 작은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물벼락이 쏟아질 것처럼 어두침침해졌다. 나는 비에 홀딱 젖은 생쥐 꼴이 될까 봐 불안해져서 도망치듯 달렸다. 그러다가 바로 내 키보다 조금 큰 나무 옆을 지날 때, 뭔가 이상해서 잠시 멈칫하였다. 그 나무에는 가지 끝마다 노란 것들이 뾰족뾰족 달렸다. 난 그것이 처음엔 꽃봉오린 줄 알았다. 하지만, 꽃봉오리보다는 더 화사해 보였다. 가만 보니 그것은 꽃이었다. 바로 올봄에 우리 공원에서 처음 핀 꽃! 다른 나무들..
2008.03.31 -
2007.09.29 사랑해, 친구야!
2007.09.29 토요일 2교시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와 보니까 내 책상 위에 우리 반 아이들이 나에게 쓴 편지 모음 책 가 놓여 있었다. 1학기 말 박영은 선생님이 오셨을 때부터 시작했던 반 친구에게 편지 쓰기는 우리 반만 하는 사랑 나눔 릴레이 행사인데, 1번부터 끝번까지 차례대로 한 명씩 반 친구들 모두가 그 아이에게 주로 칭찬할만한 점이나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쓰면 선생님께서 묶어서 책으로 만들어 주신다. 나는 그 책을 열어보기 전에 가슴이 쿵덕쿵덕 방아질하듯 뛰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우리 반 친구들과 제대로 친하게 지내본 적이 없어서, 과연 아이들이 나에게 뭐라고 썼을까 기대도 되고 두렵기도 하였다. 그러나 편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그 동안 나의 걱정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봄..
2007.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