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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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에서
2013.12.12 목요일 4교시 후, 안국동 북촌한옥마을 체험학습을 위해 학교 문을 나섰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 같지만, 북촌한옥마을의 정확한 위치를 잘 몰라서, 학교에서 나눠 준 지도를 토대로 우리가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안국동 지역을 샅샅이 알고 있다는 형진이를 앞장 세웠다. 마침 하늘이 온통 하얀색이었고, 그 사이사이로 작은 알갱이들이 마구 휘날렸다. 언제부터 내렸을까? 벌써 운동장은 갈색 모래바닥보다 하얀색 눈밭이 더 많았다. 아침부터 꾸물꾸물 하늘이 온통 잿빛이더니, 결국에는 제설기가 터진 것처럼 하늘에서 눈이 우수수수 떨어졌다. 아이들의 반응은 선명하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아직 동심이 살아 있는 걸까? 맨손이 불에 덴 것처럼 새빨개진 채로, 아무 감각도 없어질 때까지 눈뭉치..
2013.12.12 -
물빛광장 위의 새털구름
2013.07.19 금요일 기말고사가 끝난 나의 하루 일과는 별 볼일 없다. 방학을 앞두고 친구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활기차다. 친구들끼리 단체로 반대항전 게임을 하러 우르르 피시방에 갈 때도, 나만 혼자 빠져나와 집으로 힘 없이 걸어온다. 집에 오면 굳은 얼굴로 방문을 닫고 커튼을 닫고 방을 어두컴컴하게 만든다. 그안에서 누에고치처럼 틀어박혀 있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다시 방에 틀어박혀 기면증 환자처럼 쓰러져 잠이 든다. 아무 일에도 의욕이 없고 무료하고 지루하며 생산적이지 못한 날들. 저녁에 엄마, 아빠가 집에 들어오셔서 잠깐만 바람 쐬러 가자고 하면서, 나랑 영우를 반강제로 차에 태워 어디론가 끌고 가셨다. "어디 가는 거예요?", "여의도에!" 차창 밖엔 장맛비가 잠간 멈춘 틈을 타, 바람..
2013.07.23 -
쿠폰 쓰기는 참 어려워!
2011.08.06 토요일 "하아히~!" 소리를 내며 영우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다시피 하였다. 아빠는 "아효~ 이런!" 하셨고, 나도 김이 빠져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똑같이 김빠진 콜라만 꿀꺽꿀꺽 들이켰다. 우리 가족은 올여름 휴가 가기가 매우 어려웠다. 아빠, 엄마가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웠지만, 휴일마다 비와 태풍이 약속이라도 한 듯 들이닥쳤기 때문에, 사실 이번 여름에는 그저 달력에 그려진 바다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아빠가 어렵게 시간을 내어, 인터넷에서 태릉에 있는 수영장 반값 쿠폰을 끊으셔서 바다는 아니지만, 고기를 굽고 수영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야외 수영장으로 잠시 놀러 갈 수 있게 되었다. 방학 중에는 그다지 일찍 일어나지 않았지만, 오..
2011.08.11 -
청운 중학교의 불티 나는 매점
2011.03.04 금요일 오늘은 입학식을 한지 3일째 되는 날이다. 그래서 아직 학교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진 못하지만, 학교 뒤편에 있는 매점에 나는 꼭 가보고 싶었다. 가끔 초등학교 때부터 중, 고등학교에 가면 매점이 있다는 소리에 솔깃했는데... 매점에는 값도 싸고 맛도 좋은 음식들을 팔아서, 학생들은 매점 음식을 먹는 걸 아주 즐긴다고 한다. 비록 영양가는 없을지라도! 나는 점심을 푸짐하게 먹은 후, 여기저기 산책하다가 드디어 매점에 들러보았다. 그런데 매점 주위에 무슨 큰일이 났는지, 이상하게 학생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그리고 매점 문앞에서는 한 아저씨가 효자손처럼 생긴 막대기를 들고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나는 무슨 큰 싸움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니 매점..
2011.03.05 -
목욕탕에서
2010.04.11 일요일 찰방! 첨덩! 내가 물과 처음 접촉했을 때 난 소리였다. 나는 점점 더 물속으로 다가가서 온몸을 담갔다. 순식간에 시원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왔다. 오늘은 아침부터 몸이 계속 좋지 않고, 물만 마셔도 토를 하였다. 하지만, 힘을 내어 가족과 함께 '용암천' 목욕탕으로 목욕을 왔다. 그 목욕탕은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커다란 수영장이 딸려 있었는데, 오랜만에 시원한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그니, 내 몸이 물에 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시 이런 기분을 느껴본다. 나는 온몸에 힘을 빼고 뒤로 넘어가듯, 철퍼덕~ 소리와 함께 몸을 일자로 하고 누웠다. 물 위에 둥둥 떠있으니 꼭 하늘 위에 떠있는 것 같다. 내 몸을 받치는 물은 시원했고, 꼭 침대처럼 부드..
2010.04.13 -
전교 회장 선거
2009.03.13 금요일 선생님은 얼마 전에 교실에 새로 들어온 TV를 자랑스럽게 켜셨다. 그리고 전교 회장 선거가 열리는 우리 학교 강당이 나오는 화면에 채널을 맞추시고, 회장, 부회장 후보의 연설을 들으라고 하셨다. 5, 6학년 중 자원한 열 몇 명 되는 후보들의 연설을, 하나하나 방송으로 들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설을 들으며 무엇보다 화면에 비추는 후보들의 눈빛을 자세히 관찰했다. 나는 눈빛을 통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어떻게 눈빛을 통해 아느냐고? 그 기준은 간단하다. 자신을 사랑하고, 삶에 대한 의지와 목표가 있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눈에서 푸른 빛이 나온다. 아니, 눈빛에서 푸른 희망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눈빛은, 나이가 아주 많은 할아버..
2009.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