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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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소동
2009.01.03 토요일 엄마가 바쁘셔서 집에 안 계셨다. 나는 배가 고파서 영우랑 밥 타령을 하였다. 그래서 아빠는 우리를 데리고 집에서 좀 떨어진 시골길에 있는 식당으로 가셨다. 그 식당은 오늘 다른 건 안 되고 설렁탕만 된다고 했다. 영우랑 나는 설렁탕을 훌떡 먹고 식당 밖으로 나와 뛰어놀았다. 영우는 주차장 마당 한가운데서 춤을 추며 놀았고, 나는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마른 풀숲 속을 파헤치며 놀았다. "영우야, 이리와 봐!" 영우는 춤을 추다가 "왜?" 하며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나는 바로 전에 풀숲 돌무더기 사이에서 발견한, 네모난 바닥에 브이(v)자 모양의 무늬가 찍혀있는 거칠거칠한 회색빛 돌을 영우 눈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영우는 얼굴을 돌에서 뒤로 떼고, 양손을 모아 돌을 잡고, "..
2009.01.05 -
빨간 비가 내리는 언덕
2008.10.19 일요일 오후에 엄마랑 영우와 산책하러 나갔다. 영우가 숙제로 나뭇잎을 모아가야 한다며 아파트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을 하나, 둘 주웠다. 나는 "아! 예쁜 나뭇잎이 많은 곳을 알고 있어! 따라와!"하고는 어제 친구들과 처음 가 보았던 5단지 산책로를 찾아 달려갔다. 우리는 놀이터를 따라 내려와 차들이 달리는 아파트 앞 도로를 건너, 아파트 단지 마지막에 붙어 있는, 509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돌계단을 날듯이 뛰어올라갔다. 잃어버린 보물을 찾기라도 하려는 기세로! 계단을 올라가니 구불구불한 산책로 양옆에 아담한 풀밭이 펼쳐져 있고, 빨간 나뭇잎들이 장미꽃 이파리처럼 여기저기 부슬부슬 떨어져 있었다. 영우는 "우와~! 진짜 색깔이 예쁘다!" 하고 좋아하며 풀밭에 코를 박듯 엎드려 나뭇잎을..
2008.10.21 -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 - 상우 여행일기
2008.04.15 화요일 우리가 도착한 펜션은, 깊숙한 시골 바다 절벽 위에 아찔하게 서 있었다. 펜션 안에는 작고 예쁜 마당이 있고, 마당 벼랑 끝에 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검은색 녹슨 창살 문이 어서 와요! 하고 열려 있었다. 아직 6월이 아니라서, 꽃봉오리는 피지 않고 가시만 잔뜩 붙어 있는 장미 덩굴에 칭칭 둘러싸인 채! 그 문을 조심스럽게 통과하면, 처음에는 평평한 돌계단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소나무 숲을 뚫고 들어가는 울퉁불퉁하고 험한 나무 계단 길이 이어진다. 영우랑 나는 그게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궁금하여 밑으로 계속 내려가 보기로 하였다. 영우가 먼저 날쌘 청설모처럼 순식간에 계단을 샥샥 내려갔다. 계단 길은 폭이 좁고 난간도 없이 구불구불 험하게 이어졌다. 계단이 너무 높아 나는 ..
2008.04.16 -
흔들다리 위에서
2008.03.16 일요일 새로 이사 갈 집을 알아보고 돌아오던 중, 너무 배가 고파서 길가에 보이는 식당에 내려 밥을 먹었다. 나는 국밥을 뚝딱 먹어치우고 먼저 밖으로 나와 서성거렸는데, 식당 뒷마당에 특이한 것이 있었다. 뒷마당 끝은 바로 절벽이고, 그 밑으로 운동장만 한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철판을 붙여 만든 기다란 흔들다리가 그네처럼 걸려있었고, 그 다리를 건너면 또 다른 식당 마당이 이어지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신났다고 그 다리 위를 쿵쿵 뛰어다니며 왔다갔다 놀았다. 그러나 뛸 때마다 다리가 끼이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면서 마구 출렁거렸다. 나는 조심조심 발을 내밀어 다리 중간까지 걸어갔는데, 갑자기 나보다 쪼그만 아이들이 내 옆에서 일부러 팡팡 뛰었다. 그러자 다리가 끊..
2008.03.17 -
2007.10.24 기다림
2007.10.24 수요일 학교에서 기침을 너무 심하게 해서 급식도 먹지 않은 채, 조퇴를 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돌아오는 길은 견딜만했으나 문제는 집에 다 와서부터였다. 벨을 누르고 "상우예요, 상우예요!" 하며 몇 번씩 문을 땅땅 두드렸지만 돌아오는 건, 내가 누른 벨 소리가 집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아무도 없음을 알고 어떻게 할 줄 몰라 한 동안 서있었다. 아무래도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층간 계단으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엘리베이터 소리가 '띵' 하고 날 때마다 엄마가 아닐까 하고 살펴 보았지만, 대부분 우리 집이 있는 5층에서 서지 않고 다른 층에서 멈추었다. 나는 기다리다 못해 1층으로 내려가서 돌덩이처럼 무거운 가방과 잠바를 벗어..
2007.10.25 -
2006.09.09 가을
2006.09.09 토요일 나는 아빠와 함께 오디오를 고치러 시내로 나갔다가 저녁을 사 먹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 영우와 함께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를 들고 식당앞 마당으로 나갔다.우리는 거기서 어른들처럼 커피 마시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갑자기 차가운 북풍같은 바람이 '위이이잉' 하고 불어 닥쳐 오더니 뼈와 혈관이 얼어 버릴 것 같았다. 바람이 세서 마당에 서 있는 아직 노래지지도 않은 초록빛 은행잎들이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무들은 마치 '아직 떨어지면 안돼! 가을도 아닌걸!' 하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것 같았다. 영우와 나는 오들 오들 떨면서도 차가운 매실차를 마시고 있는데 엄마가 "애들이 추운데 밖에서 차가운 걸 먹고 있어? 들어와!" 해서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숭늉을 마셨다.
2006.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