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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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끼어가는 차
2011.09.11 일요일 "상우야, 앞으로 작은 삼촌까지 4명이나 여기 타야 되니까, 저쪽으로 바짝 붙으렴!" 아빠가 말씀하셨다. 우리 차에 아빠 말고, 어깨가 떡하니 기골이 장대하신 큰 삼촌과 작은 삼촌, 그리고 엄마, 덩치가 성인 못지않은 나, 영우와 사촌 동생 진우까지 타니, 이건 마을버스가 따로 없을 것 같다. 차를 타고 달리는 중간에 폭~ 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아빠가 운전하시고 그 옆엔 큰 삼촌이 앉으셨고, 뒷좌석에는 사촌 진우가 내 무릎에, 영우는 엄마 무릎에, 작은 삼촌은 엄마의 짐을 무릎에 놓고 가야 했다. 진우가 날 누르는데다 사람들로 꽉꽉 차니, 통조림 깡통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또 차 안의 공기만으로 일곱 사람이 숨 쉬니 더워 못 견디겠다. 창..
2011.09.16 -
슬리퍼를 신고 처음 본 연극
2011.05.28 토요일 오늘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연극을 보았다. 6월에 있을 교육과학기술부 블로그 기자 해단식을 앞두고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오늘 그동안 활동했던 기자들이 대학로에 모여 연극도 보고 식사도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나 나는 약속 장소로 오는 내내 마음이 우울했다. 요즘 나는 사는 것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아직도 나는 모든 게 미숙한데 주위에서는 내게 완벽한 행동과 현실성을 요구한다. 마치 나는 채식주의 상어인데, 엄청 용감하고 물고기 잡는 데 앞장서는 사냥꾼 상어이기를 강요받는 현실에 나는 자꾸만 자신감을 잃는다. 나는 도서관에 있다가 허둥지둥 약속 장소로 오는 길에, 신발이 없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약속 시각에 늦을까 봐 급하게 구한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거리를 걸어야 했다...
2011.05.31 -
처음으로 막은 공
2010.06.21 월요일 요즘 나는 기말고사 기간인데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놀이터 축구장으로 향한다. 오늘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민석이, 재호와 축구를 하려고 뛰어나갔다. 영우도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형아, 나도 끼워줘!" 하면서 잽싸게 따라나섰다. 이번에 내가 맡은 역할은 골키퍼이다. 내가 운동을 아주 못한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4학년 처음에도 내 덩치만 보고 아이들이 골키퍼를 시켰는데, 되려 공을 피해서 욕을 먹은 적이 있었다. 골키퍼를 할 때마다 '이번에는 꼭~!' 언제나 굳은 각오를 하지만 번번히 실패만 했다. 이번에는 재호와 한팀이 되어서 나는 골키퍼, 재호는 미드필더다. 나는 옛날에 아빠가 쓰시던 장갑을 가져와 끼고, 나름대로 열심히 했건만 이번에도 번번히 공을 놓쳤다. 4..
2010.06.22 -
할머니와 동물원에 간 날 - 2탄
2010.05.02 일요일 이제 동물원에는 마지막 하루해가 뜨겁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주홍빛으로 빛나는 해를 머리 위에 짊어지고, 우리는 이번 동물원에 클라이막스! 맹수들을 보러 갔다. 갈색 곰은 꼭 '시턴 동물기'에 나온 곰을 연상시키고, 엄청난 덩치이지만 꼭 덩치만큼이나 마음은 따뜻할 것 같았다. 온몸에 촉촉하게 젖은 땀이 햇빛에 빛나니, 꼭 야생의 곰을 보는 것처럼 신비하고 마음을 잡아끌었다. 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사각 철창에 표범, 치타, 재규어 같은 조금 작은 맹수들을 지나치다, 어느 순간 철창이 없어지고 큰 산같이 올록볼록한 지형이, 인도에서 멀리 떨어져서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유롭게 앉아서 낮잠을 즐기고, 어깨를 웅크리고 사나운 눈빛으로 번뜩이는 호랑이들이 보였다! 호랑이는 특이하게..
2010.05.06 -
화장실에서 읽은 시
2009.03.10 화요일 급식을 먹고 나서 나는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우리 학교는 층마다 화장실벽에, 액자에 시를 써서 걸어놓았는데, 난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골고루 돌아다니며 시를 읽는 걸 즐겼다. 단 2층 화장실은 한 번도 안 가봐서 오늘은 특별히 들러본 것이다. 세면대 위쪽에 붉은 보리밭 그림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시가 쓰여있었다. 나는 그 액자에서 가장 가까운 소변기에서 쉬를 하며 시를 읽었다. '여울에서 놀던 새끼 붕어, 다 커서 떠나고, 여울은 그때 그 또래 꼭 똑같네! 동네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길, 아이들은 다 커서 떠나지만, 그 골목길은 그 또래 그대로이다!' 이 시를 읽고 나는 순간 멍해졌다. 뭔가 많은 느낌과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치 우리가 어릴 때는 엄마 아빠 품에 잘 놀다..
2009.03.11 -
승부가 뭐길래!
2009.02.07 토요일 4교시에 국화 반과 축구 시합을 하였다. 안개 때문에, 오늘따라 운동장을 감싸는 공기가 음침하게 느껴졌다. 국화 반이 어떤 반인가! 유난히 운동을 좋아하는, 덩치 크고 기운 팔팔한 아이들이 몰려있기로 이름난 반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되자마자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격전이 펼쳐졌다. 나는 수비수로 뛰면서 비정한 눈빛의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국화 반 아이들에게 은근히 기가 죽었다. 하지만, 겁먹은 티 내지 않고 눈썹에 힘을 주고, 이를 앙 문 채 밀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는 곰이 아니다, 사자가 되어야 해, 공을 놓치지 말자!'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안간힘을 썼는데, 전반전은 2골을 내주고 말았다. 후반전이 들어서자, 우리 송화 반은 더 악착같이 달렸다. 특히, 준렬이, 성환이..
2009.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