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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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와의 대화
2009.08.16 일요일 우리 가족은 아빠 친구, 동규 아저씨 가족을 만나, 중국 요리집으로 들어갔다. 동규 아저씨가 우리가 대구에 온 기념으로 맛난 것을 사주셨다. 우리는 신이 나서 떠들며 가족석으로 줄줄이 들어갔다. 나는 영우와 나란히 앉고, 나랑 나이가 같은 친구 은지와, 은지 동생 민재는 맞은 편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낮에는 할아버지 생신이라 한식을 배불리 먹었는데, 저녁엔 중국 음식이라~ '이거 오늘 땡 잡았군!' 하면서 팔보채, 탕수육, 자장면을 쩌접쩌접 먹었다. 그중 자장면이 제일 맛있어서, 나는 후루룩~ 씹지도 않고 넘겼다. 엄마가 나와 은지에게 자꾸 대화를 나눠보라고 하셨지만, 우린 그럴 때마다 안녕? 응~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영우는 마주 앉은 민재에게 툭툭 장난을 치며 먹었고, ..
2009.08.19 -
회는 무슨 맛일까?
2009.03.28 토요일 오늘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아빠 친구 가족들과 모임을 했다. 오랜만에 대구에서 오신 동규 아저씨 가족을 환영하는 모임이기도 했다. 특히 동규 아저씨와 초등학교 선생님이신 아줌마는, 내 블로그를 많이 칭찬해주셨다. 우리는 처음에 고깃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으려 했다. 그러나 고깃집에 사람이 너무 많고 시끄럽고 연기가 부글부글 나서 아기에게 안 좋겠다고, 지하에 있는 횟집으로 발을 돌렸다. 지하상가는 무지 썰렁했고, 횟집도 조금 허름해 보이고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우르르 들어가니 횟집이 꽉 찼고 주인아줌마의 동작이 빨라졌다. 난 회를 별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내키지가 않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따라 들어갔다. 상을 붙이고 방석을 깔고 아빠는 아빠 친구들과 모여 앉고, 엄마는..
2009.04.02 -
암에 걸린 할머니
2008.10.05 일요일 며칠 전부터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대구에 입원해 누워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가셨기 때문이다. 나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아직 남은 감기 기운이 할머니께 좋지 않을까 봐 참고 다음번에 찾아뵙기로 하였다. 할머니가 암이라는 소식을 듣고 나는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멍했다. 그리고 '분명 이건 꿈속에서 들은 소식일 거야. 이 꿈이 깨면 나는 침대에 누워 있을 거고, 학교에 가야 할 거야, 그러면서 나는 휴~ 내가 악몽을 꾸었구나! 하고 안심할 거야!'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나는 3년 전 외할아버지께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도 가슴이 무너지듯 놀랐다. 다행히 외할아버지는 고비를 넘기셨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 지금은 많이 ..
2008.10.07 -
2007.09.22 친할아버지
2007.09.22 토요일 우리가 대구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부슬부슬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맨처음 벨을 아빠가 누르니까 집 안에서 할머니가 "방앗간 아저씨, 벌써 왔슈?" 하셨다. 아빠가 그 말을 듣고 급하게 "아니요, 상우네가 왔습니다!" 라고 하셨다. 안에서는 "상우야?" 하는 할머니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고, 잠시 뒤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기다리시느라 양복까지 입고 계셨다.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할아버지 댁 마루에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께 큰 절을 드렸다. 할아버지는 나를 안아주시려다가 "아이쿠, 이젠 할아버지가 상우를 안는 게 아니라 상우가 할아버지를 안아주어야겠구먼!" 하셨다. 처음에 할아버지 얼굴은 항상 그랬듯이 인조 인간처럼 빳빳하고 엄숙하셨는데, 오..
2007.09.22 -
2006.10.06 대구의 냄새
2006.10.06 목요일 우리 가족은 어제 밤에 친할아버지댁인 대구에 도착하였다.잠에서 깨어 보니 오전 여섯시 십오분이었다.창밖에 하늘은 아직 연한 남색이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주 특이한 냄새가 났다.그냄새는 아주 고소하고 느긋한 냄새였다.나는 그냄새를 찾아 나섰다.그리고 부엌에서 찾아냈다. 그것은 부엌 한 귀퉁이 항아리에 담겨 있는 싯누런 콩이었다.우리 할머니가 맛있는 된장을 담그려고 푹 익혀둔,방금 눈 따끈따끈한 똥같은 콩이었다.나는 그냄새를 느긋하게 맡아 보았다.
2006.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