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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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푹 빠진 날
2010.01.04 화요일 저녁 8시, 나는 영우와 함께 심부름을 하려고, 아파트 단지에 산처럼 쌓인 눈길을 헤치고 상가로 내려갔다. 매일 보던 길이지만, 폭설에 잠겨서 처음 보는 곳처럼 낯설었다. 우리는 새하얀 눈의 행성에 처음 도착한 우주인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저부적, 저부적~ 소금같이 수북하게 쌓인 눈 속을 걸어나갔다. 눈길은 가로등과 달빛에 비교도 안되게 하얀 운석처럼 빛났다. 눈이 적당히 쌓이면 환상적일 텐데, 도로를 포장한 듯 덮어버리니 어디를 밟아야 할지 분간이 안돼서 걸음이 위태위태했다. 그런데 마침 내가 맘 놓고 걸어보고 싶은 길이 눈에 띄었다. 그곳은 원래 차도와 인도 사이에 화단을 심어놓은 넓은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비어 있고, 눈이 아이스크림처럼 푸짐하게 쌓여 있었다. ..
2010.01.06 -
눈 온 날은 끔찍해!
2009.12.28 월요일 밤새 눈이 내려서 집 앞마당이 아이스크림 왕국처럼 하얗게 빛났다. 나랑 영우는 부랴부랴 옷을 입고 놀이터로 향했다. 너무 추우니까 조심하라는 엄마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길바닥에는 발목까지 덮을 정도로 눈이 쌓였다. 우리는 눈밭 위를 걷는 펭귄처럼 기우뚱기우뚱 탑탑! 일부러 눈이 많이 쌓인 곳을 밟고 다녔다.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맑게 울렸다. 나는 실수로 그만 얼음이 단단하게 언 땅을 밟아서 한발로 쭉 미끄러져 갔다. 그런데 한 발은 얼음 위에 있고, 다른 한쪽 발은 시멘트 땅 위에 딛고 있어서, 땅에 있는 발이 얼음 위에 발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두 손을 허공에 마구 휘젓고, "으어어어~" 고함을 지르며 헛발질을 하면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2009.12.31 -
눈싸움
2008.01.12 토요일 나는 아침부터 마음이 급했다. 어제 내린 눈이 그 사이에 녹아서 눈싸움도 못하고 눈사람도 못 만들면 어쩌나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자마자 공원으로 달려나갔는데, 눈이 다 풀밭으로 스며들어 아이스크림 녹은 것처럼 스믈스믈거렸다. 영우와 나는 울상이 되었다. 아빠가 "서오릉으로 가자! 서삼릉은 분명 사람들이 많을 테고, 서오릉은 아직 눈이 한창일 거야!" 하셨다. 과연 서오릉에 들어서니, 하얀 눈이 미끄러운 카페트처럼 펼쳐져 있고, 어떤 데는 발이 푹 빠지도록 깊었다. 우리는 눈이 더 많이 쌓여 있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눈을 굴려 몸통을 만들고, 영우가 머리를 얹어 붙이고, 주위에서 이것저것 재료를 찾아다가 꾸몄다. 내가 마른 솔잎 가지들..
2008.01.12 -
2006.12.16 폭설
2006.12.16 토요일 밤이 되자 엄마와 나와 영우는 모험심을 키우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추위를 막기 위해 목도리를 둘둘 감고, 장갑을 끼고, 단단무장하였다. 바깥은 어둡고 바람이 불면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북극 탐험 놀이를 하느라 추운 것도 잊었다. 신호등 앞에서는 지나가는 차들을 북극곰이 이동하고 있는 거라 여기며 기다렸다. 추워서 뒤뚱거리는 사람들을 펭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서점에 들러 책도 사고, 햄버거도 먹고 돌아 오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이 살살 와서 "야! 눈이다!" 하고 좋아했는데, 갈수록 눈이 막무가내로 펑펑 쏟아져 내렸다. 엄마와 나는 안경이 눈에 젖어 하얗게 물이 흘렀고, 오리털 잠바가 눈에 파묻혀 눈사람이 되어 걸어 가는 꼴이었다. 전자 ..
2006.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