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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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왜 이렇게 넓은 거지?
2010.10.22 금요일 오늘 우리 학교 6학년은,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서울 서대문 형무소와 경복궁에 견학을 오는 날이다. 친구들은 단체로 버스를 타고 오지만, 나는 도시락을 메고 걸어서 서대문 형무소에 도착했다. '학교를 멀리 다니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 나는 여유롭게 약속 시간에 맞추어 산책하듯 길을 나섰는데, 오늘따라 이른 아침 햇살이 얄밉게 따가웠다. 사직동 터널을 지나니 시야가 트이고, 대번에 독립문 입구가 보였다. "아~ 맑다!"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형무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 반 아이들과 만나, 곧바로 서대문 형무소로 들어갔다. 서대문 형무소는 고문을 모형해 놓은 곳이 공사 중이라 빨리 나와서,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경복궁으로 이동하였다. 뭐랄까? 언제나 걸어 다..
2010.10.25 -
헌법재판소 판결처럼 우울한 날씨
2009.10 31 토요일 점심을 먹고 축농증 치료를 받으러 상가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제까지 아파트 단지마다 붉고 노란 나뭇잎이 땅바닥에 가득 뒹굴었고, 나뭇가지에도 빨간색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예뻤는데, 오늘은 다르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그동안 가을을 지켰던 풍성한 나뭇잎을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떨어내버렸다. 그래서 나뭇가지들은 바짝 말라서 쪼글쪼글해진 할머니 손처럼, 또는 X레이에 찍은 해골의 손뼈처럼 가늘가늘 앙상하다. 내가 조금만 건드려도 톡 부러질 것 같다.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었던, 가을의 빨간 축제가 매일 열리던 길목은 이제 끝났다. 내가 걷는 길은, 차가운 비가 투툴투툴 내리는 추억 속의 쓸쓸한 길이 돼버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산 속에서 햇빛을 못 받아 어..
2009.11.01 -
여름 밤, 모깃불을 피워요!
2009.07.25 토요일 밤이 되자 텐트촌은 모기들이 나타나 시끄러웠다. 텐트촌 관리 아저씨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여기저기서 모깃불을 피우느라 바빠졌다. 나도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모기불 피우는 법을 익혔다. 텐트촌 가장자리에, 마른 소나무 잔가지가 짚더미처럼 수북이 쌓여 있는 데가 있다. 우리는 거기서 소나무 잔가지를 한 아름 주워들었다. 아빠는 우리 텐트 앞마당에 흙을, 꽃삽으로 싹싹 파서 둥근 구덩이를 만드셨다. 우리는 그 구덩이에 소나무 잔가지들을 넣었다. 그런 다음 아빠는 권총같이 생긴 화염 방사기의 끝을 잔가지에 겨냥하고 방아쇠를 딱~ 당겼다. 불은 한 번에 나오지 않고, 몇 번을 딱딱딱딱 하니까, 기다란 총 끝에서 시퍼런 불이 튀어나와 소나무 잔가지들을 감쌌다. 소나무 잔가지들에 불이 붙기 ..
2009.07.29 -
던져라, 눈 폭탄!
2009.01.17 토요일 나는 오후 늦게 영우와 집 앞 놀이터로 나갔다. 소복소복 쌓인 눈을 밟으니 너무 행복해서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뽀드득 치익~ 내리막길을 미끄러지자, 놀이터 입구에 우뚝 솟은 오두막 집이 보였다. "어! 저기 경훈이다!' 나는 오두막 옆쪽에서 걸어나오는 친한 친구, 경훈이와 동생 지훈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나와 영우는 "툭 파사사~" 눈길을 제치고, 경훈이와 지훈이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우리가 달려오는 걸 알아차린 경훈이가,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지훈이에게 말했다. "쟤네들 분명히 우리한테 눈 던진다!" 경훈이 말이 딱 맞았다. 나는 경훈이에게, 영우는 지훈이에게 눈 뭉치를 던졌다. 내가 던진 눈이 경훈이 잠바에 "펑~!" 맞으며, 경훈이가 "오메~!" 하고 소..
2009.01.18 -
날씨가 추워져요!
2008.10.23 목요일 오늘,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놀랐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아파트 입구를 나서며 경비 아저씨께 인사를 할 때, 갑자기 매서운 칼바람이 내 몸을 쓱~ 휩쓸고 갔다. 나는 너무 추워서 온몸이 핸드폰 진동처럼 즈즈즈즉 흔들렸다. 그리고 '후~' 숨을 한번 내뱉었는데, 입에서 입김이 눈보라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속으로 '아! 그동안 그렇게 덥더니, 드디어 제대로 된 추위가 오는구나!' 생각했다. 깡 말라서 쪼글쪼글 비틀어진 나뭇잎들이 칼바람을 못 이기고 후두 두둑 떨어져 내렸다. 나는 다리를 오므리고 으으~ 하면서 걸었다. 영우는 아흐흐흐~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바람에 대항하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걸었다. 자꾸 바람이 얇은 잠바 옷깃으로 스며들어 와서, 뼛속까지 관통하고 빠져나..
2008.10.24 -
삼계탕의 효과
2008.07.30 수요일 어제가 중복이었는데 삼계탕을 못 먹어서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 댁에 삼계탕을 먹으러 갔다. 할머니께서 잘 아신다는 삼계탕 집을 향해, 낡고 좁은 골목길을 쭈욱 따라 걷다가 어떤 삼계탕 집을 발견했다. 그 집은 사람들이 입구에서부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줄을 서 있었는데, 텔레비전에도 나왔던 유명한 집이라고 했다. 나는 거기로 들어가는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할머니께서 우리가 가는 집은 저 밑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도착한 식당은 허름한 건물 안에 있었고, 사람이 없어서 아주 조용했다.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주인아주머니가 방으로 안내하였고, 방 안에는 이미 음식이 다 차려져 있었다. 커다란 뚝배기에 토종닭 한 마리와 까만 나뭇가지, 인삼 종류, 파가 하얀 국물에 잠겨 있..
2008.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