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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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게 미안해!
2009.07.08 수요일 난 오늘 엄마에게 딱 걸렸다. 그동안 내 방을 청소하지 않고, 기말고사가 끝나면 정리하겠다고 얼렁뚱땅 미루어오다가, 결국 엄마를 폭발하게 한 것이다. 엄마는 쓰레기가 쌓여 날파리가 맴도는 내 책상을 부숴버릴 듯한 기세로 화를 내셨다. 나는 한바탕 혼이 난 다음, 묵묵히 내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 책상을 한참 바라보다가, 흐음~하고 한숨을 쉬었다. 햇빛을 받지 못한 낡은 성 안에, 난쟁이들이 마구 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계단처럼, 책, 공책, 교과서, 종이 쪼가리, 휴지들이 겹쳐서 층층이 쌓여 있었고, 책더미 사이로 생긴 구멍에선 금방이라도 생쥐들이 들락날락할 것 같이 지저분했다. 나는 허리를 조금 굽혀서 책상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는 월요일마다 집앞에 재활용품..
2009.07.09 -
불타는 토스트
2009.07.03 금요일 드디어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는 날개를 단 기분으로 학교 앞, 피아노 학원이 있는 상가 1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15분, 지금 가서 줄을 서면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오늘 상가에서 '불타는 토스트'라는 가게가 문을 여는데, 개장하는 날 특별 이벤트로 낮 12시부터 선착순 200명까지 햄 토스트를 무료로 준다는 광고를, 아침부터 나는 눈여겨보았었다. 상가 앞엔 벌써 공짜 토스트를 먹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뱀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줄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이미 줄이 꽉 차 있어서, 나는 줄에 서야 할 지, 말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은 채, 줄에 섰다 나갔다를 반복하였다. 그 사이에 우리 반 성환이와 인호가, 노릇하고 두툼한..
2009.07.05 -
산마을에 없는 것
2009.07.01 수요일 이틀 뒤면 있을 기말고사를 앞두고 나는 막바지 공부를 하였다. 사회 과목을 정리하다가 이라는 단원 중, 산촌에 관한 설명과 사진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지난 주말에, 아빠의 친한 친구 분들 가족과 문경새재란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보았던 산마을의 모습과 사진이 똑 닮았기 때문이다. 교과서에서 배우기를, 우리나라의 촌락은 농촌, 어촌, 산촌으로 나뉘어 있고, 그중 산촌이 경치가 제일 좋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내가 가는 곳마다 시원하고 푸른 속리산 자락이 그림처럼 쫓아오고, 계단식 논밭에 심어진 키다리 옥수수와 산마을 허수아비가 나를 열렬히 환영하듯, 뜨거운 바람에 추와아~ 흔들렸다. 내 입에서는 오직 "우와~!" 하는 탄성만 가슴 밑에서부터 팡팡 터졌다. 그런..
2009.07.02 -
달리기의 여왕
2009.06.24 수요일 1교시 체육 시간, 우리 반은 여느 때처럼 운동장에서 단계별로 기초 운동을 시작했다. 우리는 요즘 한창 기말고사 준비를 하느라 피곤한 탓인지, 모두 찌뿌드드한 표정으로 기초운동을 해나갔다. 게다가 날씨는 어떤가? 습기 한 점, 구름 한 점 없고, 따가운 햇볕에 닿는 부분은 살이 타들어가 까맣게 재가 되는 것 같았다. 특히 철봉을 만질 땐 불로 달군 쇠를 잡는 것 같이 코끝이 일그러졌다. 그러자 체육 선생님께서는 시들시들 시금치처럼 늘어진 우리를 모이게 해서, 남자, 여자 나란히 줄을 세워 운동장 중간으로 데려가셨다. 그리고는 앞줄에 선 아이들이 "이어달리기를 해요~"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나는 곧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제발 안돼! 얘들아, 이어달리기만은~ 너희들 나 ..
2009.06.25 -
후회 없는 시험
2008.12.06 토요일 첫째 시간, 우리 반은 어제 보았던 기말고사 시험지를 나누어 받았다. 이번 시험은 중간고사보다 난이도가 쉬운 편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번이 4학년 최악의 시험이 되지 않을까 초조했었다. 기말고사를 보기 전까지 나는 내 실력을 끝없이 의심하면서 마음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나누어주는 시험 대비 학습지를 풀 때마다, 번번이 점수가 엉망이었고, 점수가 척척 잘 나오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고 부러워서 한숨이 푹~ 나왔다. 특히 이번에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수학이 나를 괴롭혔다. 그중에 라는 단원이 머리에 뿔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항상 소수점 몇째 자리까지 정확하게 계산하는 법에 재미를 붙였었는데, 갑자기 모든 수를 대충 어림해서 계산하라니, 도무지 적응할 ..
2008.12.07 -
외할아버지와 수박
2008.07.05 토요일 기말고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서울에 계신 외할아버지댁을 찾아나섰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날씨가 엉망이었다. 비가 오려면 시원하게 올 것이지, 약 올리게 툭툭 떨어지고 하늘은 곰팡이가 핀 것처럼 어둡고, 무덥고 습기가 차서 기분까지 꿉꿉하였다. 영우랑 나는 자꾸 짜증을 부리며 차 안에서 티걱태걱 싸웠다. 할아버지 사 드리려고 토마토 농장을 들렸는데 비가 와서 천막을 친 문이 닫혀 있었다. 시내로 접어드니까 차가 막혀 몇 시간을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꽉 막힌 도시 안에서 낡은 건물들 위로 번개가 빠방! 치고, 하늘은 더 새카매지고, 빗줄기가 신경질 부리듯 쏟아졌다. 영우랑 나는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었는데, 저녁이 되었고 푹 꺼지듯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사시는 동네는..
2008.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