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에서 멈춘 시간들

2014. 10. 11. 19:54일기

<세월호 침몰에서 멈춘 시간들>

2014.10.09 목요일


무시하려고 애를 썼다. 고등학교 1학년, 내 삶 살기에도 숨이 턱까지 차는 와중에, 주변 돌아가는 게 무슨 상관이냐, 성질 폭발하면 행여 다른 사람에게 모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다들 그냥 그러려니 넘기는데 나만 과민반응한다는 취급 받을까 봐, 애써 못 본 척 넘긴 날들이, 걷잡을 수 없는 추악한 소용돌이가 되어 나라를 휘감고 있다.


잔혹한 서북 청년단의 부활, 휴일 근로자의 휴일 추가노동 수당을 없애는 근로기준법 재정 안, 상가세입자의 권리금에 붙이게 되는 새로운 세금, 개인의 인터넷 이용까지 감시하는 검찰, 그리고 아직 사고의 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채 잊혀가는 세월호 참사까지... 어지럽고 불안하다.


아무리 봐도 정상답지 않은 상황들이 대기한 것처럼 줄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내가 서민이라 너무 서민의 입장으로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주는 교육비의 명목이라면 1억 원까지는 세금을 붙이지 않겠다는 개정안이 어떻게 서민을 생각한 법안인가? 국민의 거센 반발 끝에 철회했기에 망정이지, 정말 잠깐이라도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서민의 입장에서 '생각'이란 것을 해보았다면 말이다.


1억이라는 돈을 손자 교육비로 쉽게 내 줄 할아버지는 서민이라는 단어에 포함하면 안된다는 걸 몰랐을까?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있는 걸까? 강바닥을 파헤쳐서 물까지 못 마시게 한 돈을, 국회에 출석도 하지 않는 국회의원의 추석 보너스와 연금 인상은 하면서도, 자동차에, 담배에, 오만가지 엄한데 세금을 붙여서 서민들의 구멍 난 주머니를 탈탈 털어 꾸역꾸역 메꾸려 하는 마당에, 부자인 할아버지에게는 정말 엄청나게 관대한 생각을 하는구나.


세월호가 침몰한 지 벌써 6달째, 세상은 멈춰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내가 길을 걷다가 세월호 특별법 서명 부스가 눈에 띄기만 해도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어도, 마음 한켠은 항상 광화문 세월호 가족들 농성장에 가 있어도, 우리 사회는 세월호 침몰과 동시에 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암담하다.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며칠 전 국어 시간에 소설 <삼포 가는 길>을 읽다가 국어 선생님께서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던 중,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일베들의 횡포를 분노하시며 교탁을 손바닥으로 팡! 내리친 사건이 있었다. 그 울림소리에 졸던 아이들이 확 깨고 내 마음속에도 전율이 일었지!


민주주의 사회라면 어떤 현상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내 자식 죽은 이유를 제대로 알자고 단식 농성을 하며 말라 죽어가는 앞에서, 일베들끼리 치킨과 짜장면으로 폭식 투쟁을 하며 배를 불리고 유족들을 조롱하며 자기네가 애국자라고 설치고 다니는 것은 어떤 의견인가? 그건 의견이 아니라 말 그대로 조롱이고 비도덕이고 또 다른 의미의 살인이다! 육두문자와 상스러운 말을 퍼붓기 전에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다.


세월호 유족들은 단 한 번도 의사자 지정, 특례입학이나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내놓으라고 한 적이 없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고 했을 뿐이다. 사고의 원인을 철저하게 밝혀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자는 것 아닌가? 이미 죽은 자기 자식 죽은 이유나 좀 알게 해달라고, 그런데 그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 당장 우리나라 인터넷 최대 포털사이트에서 세월호 유족에 관한 기사만 찾아보아도 알 수 있다. 세월호 특별법에 결사반대한다, 그저 교통사고일 뿐인데 뭘 그렇게 과민반응이냐, 폭도들에게 실형을 줘야 한다, 자식을 팔아서 크게 한몫 잡아보려 한다는 등, 어지럽고 구토할 것 같은 일베들의 댓글 지옥이 난무한다.


쓰레기 같은 자식들, 나도 혈압이 끓어 뒷목 잡고 쓰러질 것 같은데, 행여나 유가족들이 그런 글을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정치적인 글 쓰는 것을 꺼린다. 내가 창조해 낸 콘텐츠인 <상우일기>는 아무래도 그다지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누구나 보면서 작게나마 웃을 수 있는 쉼터로 남았으면 소망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달콤하지 않은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다소 비겁하다 느껴져도 정치 냄새를 피해서 글을 쓰려 했었다. 그런데 이게 정치적인가? 언론은 진실을 말하기 두려워하고, 시궁창에서 기어나온 벌레들만이 자기 의견을 떳떳하게 말하는 세상이 왔다.


언제부터 우리가 진실을 말하는데 두려워해야 했을까? 애초에 우리는 기성세대가 피 흘려 닦아놓은 민주화 세상에서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에 자유와 진실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유와 진실이 탄압받는 이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만 해도 그렇다. 일찍부터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에 참여하고 싶어도, 평일에는 학교에 간다는 등 여러 가지 핑계로, 주말에는 늦잠을 자느라 나가지 못했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적당히 넘어갔어도 앞으로는 핑계 대는 나를 용서하지 않겠다. 네가 사는 세상에 도대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고 해결되지 않느냐고 되물으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대답이 있다. 침묵~! 불의에 대한 국민의 침묵과 방관이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지 않았냐고, 계속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을 자유까지 박탈당할지 모른다고...!


사친출처-헤럴드경제 김기훈기자의 기사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4050900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