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우물, 두리반

2013. 5. 1. 23:03일기

<달콤한 우물, 두리반>

2013.05.01 수요일


중간고사가 끝나 오랜만에 머리를 이발 하고, 아빠, 엄마와 함께 홍대 두리반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두리반으로 가는 서교동 골목에는 갑자기 여우비가 내렸다. 방금 이발한 머리에 비를 뚝뚝 맞으며 걷는데, 햇볕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온세상을 황금색으로 반짝반짝 비추었다. 나는 몹시 배가 고팠다.


마침 두리반 아줌마가 밖으로 나와 핸드폰 통화를 하고 계시다가,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크게 웃으며 반가와하셨다. 두리반으로 들어가니 주방 앞에서 일하고계시던 두리반 아저씨도 크게 웃으며 반기셨다. 두리반 벽에 걸려있는 물이 빙긋이 웃고 있는 그림과 <사막의 우물 두리반>이라는 문구도 우리를 반기는 것 같았다. "상우야, 머리를 시원하게 잘랐구나~!" 아저씨는 여전히 면도를 하지 않아서 도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셨다.



아저씨는 <섭섭해서 그런지>라는 특이한 이름의 밴드에서 드러머로 활동 하시는데, 아빠가 공연 계획을 묻자 5월 25일 동물 병원 의료인 모임에서 공연이 있는데, "여대생 이백 명이 온다는데 걱정이예요!" 하셔서 모두의 웃음보를 빵~ 터뜨리셨다. 두리반 아저씨는 얼마 전에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뫼야, 미안하다>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을 발표하셨다. 난 그 소설을 아주 쑥스러운 마음으로 감명 깊게 읽었다. 물론 아저씨께서 쓰신 명작, <매력 만점 철거 농성장>도 두번이나 읽었지만! 부모님이 아저씨와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난 음식만 기다렸다.


깍두기와 김치가 등장하고 개인 접시도 나오고 마늘, 고추, 쌈장도 나오고, 드디어 차례차례 보쌈과 칼국수, 만두가 나왔을 때, 난 아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맛집 블로거 흉내를 내어보았다. 난 미식가는 아니지만, 눈은 제대로 붙어있기 때문에 두리반의 음식은 제대로 된 재료를 아끼지 않고 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만두피가 어느 정도 얇은가 하면, 만두피 너머의 푸릇푸릇한 속이 핏줄처럼 보이고 안에 있는 내용물이 삐져나올 정도다. 그래서 일단 입에 넣으면 뜨듯한 밀가루 반죽의 맛부터 느껴지던 인스턴트 만두나 일반 분식집 만두와는 달리, 고기와 부추가 어우러진 경단이 이빨 사이로 녹아들어오며 얇은 만두의 즙이 흘러나온다.



지난 겨울, 내가 우리 가게에서 멀지 않은 두리반에 찾아갔을 때, 아저씨가 "상우야, 저녁은 먹었니?" 하시며 나를 앉혀놓고 얼른 보쌈을 시켜주셨다. 나는 "괜찮습니다." 하면서도 영업에 방해가 될까 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두리반 형아가 "상우야, 내 집처럼 편하게 앉아서 먹으렴!" 했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아저씨께서 아빠, 엄마 드시라고 만두를 싸주셨다. 보쌈을 배불리 먹었으면서도 가게에 돌아와 아빠가 드시는 만두를 뺏어 먹으며 '와, 이거 참 특별한 만두야~!' 감탄한 기억이 남는데...


이게 바로 그 만두다! 지금 내 입안에 들어있는 만두는 따뜻한 만두인데, 방금 막 수확한 싱싱한 제철 과일 같은 착각이 난다. 만두의 내용물이 너무 꽉 차, 꼭 자두 먹는 식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빠, 엄마는 아줌마랑 가게 알아보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인데, 나는 먹는데만 집중한다. 보쌈을 먹는다. 너무 기름지지도 않구 너무 건조하지도 않구, 입에서 보쌈이 씹힌다. 보쌈 그자체는 담백하지만, 함께 놓인 김치랑 싸먹었을 때는 확 다르다. 보쌈에 딸려나오는 김치는, 처음 보기에는 보쌈과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색깔이다.



그러나 무언가 김치가 맵지 않으면서 고기와 찰싹 붙는 그런 맛이 났는데, 화학조미료의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먹어도 자극적이지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쩍, 쓰읍~ 쓰읍~ 하는 소리를 내며 먹다가, 끄읍! 하고 먹음직스럽게 목으로 넘긴다. 아빠가 아저씨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본능적으로 젓가락으로 고기를 찾으며 '언제 이렇게 고기가 없어졌지?' 하는 표정을 짓다가, 다시 얘기에 취해 김치를 맛나게 먹는다.


칼국수의 면은 살짝 흐느적 흐느적 퍼져 있었고, 깊은 해물 국물이 멋지게 어우러진다. 다른 칼국수 집에서는 맛보기 힘든 특이한 맛이다. 내가 평범하게 먹던 칼국수는 면발이 통통하고 굵은 편이었고, 국물이 너무 걸쭉해서 조금만 먹어도 배가 꽉 찬 느낌이었다. 그래서 국물과 면발을 끝까지 못먹고 남긴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두리반 칼국수는 개운하고 시원한 해장국 같은 국물이 인상적이다. 두릅끅~ 두릅끅~ 국물을 마실 때마다 배가 채워지는 대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혹시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두리반 칼국수랑 딱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부드러운 국수 먹고 국물 먹고 감자, 당근, 호박, 조개까지 거의 초토화 시킨다.





아빠가 젓가락으로 남은 칼국수 가닥을 훑으며 "언제 이렇게 다 먹었지? 상우, 감자전 한번 먹어 볼래? 감자전은 두리반의 별미야!" 하셨다. 나는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계속 먹어서 배가 빵빵했지만, "시켜주신다면 거절하진 않을래요." 했다. 감자전을 기다리는 동안 아줌마가 "아니, 그릇이 왜 이렇게 다 비었어?" 하시며 깍두기랑 파김치를 더 꺼내어 오신다. 이상하게 배는 부른데 깍두기랑 김치를 물밀 듯이 먹어도 물리지가 않는다. 짭쪼름하면서도 싱싱 달착지근하게 붙고 거짓말처럼 입 안에 짠기가 남지 않는다. 두리반 아저씨는 이런 김치를 매일 드시니 얼마나 좋을까?


아빠, 엄마와 나는 머리를 둥글게 맞대고 젓가락으로 지그재그 모양으로 노릇노릇한 감자전을 찢었다. 구수한 노란빛을 풍기는 감자전을 찢는 것은 구수하고 정겹다. 그래서 두리반이야. 하지만 인스턴트 조미료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미미하고 심심한 맛에 젓가락을 내려놓을 지도 모른다. 이것은 정말로 감자만을 넣은 감자전이기 때문이다. 장식용 깻잎은 감자가 아니지만, 그외는 모두 바삭하게 구워진 감자다. 인스턴트 조미료에 물든 사람이라도 따뜻한 감자전에 촉촉한 간장을 포옥~ 찍어먹으면, 입안에서 부슬부슬 부서지는 감자전의 맛에 충분히 만족하지 않을까? 난 더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배가 불러왔다. 위장이 있는 윗배까지 툭 튀어 나오고 똥이 마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