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점심 시간

2009. 12. 9. 09:10일기

<눈 내리는 점심 시간>
2009.12.08 화요일

4교시 과학 시간이 끝나고, 현국이와 학교생활 이야기를 하며 교실 뒤를 나란히 어슬렁어슬렁  걷는데, 갑자기 현국이가 "눈이다~!" 하며 창문 쪽으로 푸두두닥~ 뛰어갔다.

뛰어가면서도 "눈이다!" 하는 현국이의 짧고 큰 외마디가, 벌써 내 눈을 시원하게 깨우는 것 같았다. 나도 몇 분 전부터 공기가 이상하게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이제 하늘에서 눈이 퐁야퐁야 내리고 있다.

나도 창문으로 달려가 "나도 좀 보자!" 하고 현국이를 밀어내고, 창밖을 바라보며 "후아아~!"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사탕에 개미가 꼬이듯 바글바글 창 앞으로 모여, "진짜 눈 와?", "와! 눈이다아~! 눈이야아~!" 외쳤다.

눈은 촘촘하게 짜진 그물처럼, 엄마가 나물 위에 뿌리는 깨처럼 하늘을 꽉~ 뒤덮고 내리더니, 꼭 하얗고 거대한 무대 커튼이 겹겹으로 막을 내리는 것처럼 내렸다. 벌써 땅에는 눈이 꽤 쌓여 있었고, 마당의 작은 대나무 숲에도 나무마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수북했다. 정말 하얗고 반짝거리는 유리구슬이 세상을 덮어버린 것처럼 눈부시고 예쁘구나!

점심 시간에 급식실로 가려고 복도에서 줄을 서서 기다릴 때, 나는 시선이 자석처럼 창밖으로만 향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중학교 운동장은, 꼭 새하얀 깃털 이불을 깔아놓은 것처럼,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 그냥 거기로 뛰어들어 눈으로 덮여 마구 뒹굴고 싶은 유혹을 어떻게 참았는지...

아이들도 들떴는지 복도가 들썩들썩, 한시도 쉬지 않고 조줄자잘 떠들어댔다. "오늘 운동장에서 눈밭 축구 할래?", "그래, 좋아!", "오늘 완전 대박이다!", "눈싸움도 하자! 왓핫하하~!" 하는 소리가 복도 안을 쩡쩡 울렸다. 복도는 꼭 영화에서 본 어느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 거리 같은 분위기가 났다.

급식을 먹으면서도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것을 보니, 눈가루가 내려서 하얀 내 밥이 된 것처럼 밥맛이 색달랐다. 밥을 먹고 나가보니 눈은 그쳤다. 그러나 눈이 쌓인 마당 위로 저학년 아이들이 카랑카랑 웃으며 뛰어다니고 미끄럼질 하는 모습은 너무나 정다웠다. 이제 겨울이다. 차갑긴 해도 마무리와 즐거움과 평화, 축복, 용서, 사과하는 마음을 이토록 설레이게 일깨워주는 것은, 역시 겨울에 송송 내리는 흰 눈이 아닐까?

눈 내리는 점심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