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따르는 재미
2009. 2. 17. 17:56ㆍ일기
<차 따르는 재미>
2009.02.15 일요일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시내 중국집으로 자장면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벽면에 일자로 붙어 있는 자리 중, 맨 구석 창가 자리를 얻었다. 그곳은 옆 손님들과 너무 딱 붙은 비좁은 자리였다.
외투를 벗어놓을 자리가 없어, 엄마는 외투를 둘둘 말아 각자 등 뒤에 쿠션처럼 고이게 하셨다. 바로 내 옆엔 입가에 자장면 소스를 듬뿍 묻힌 어린 아기가, 나를 빙글빙글 재미있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식사가 나오기 전, 물 대신 돼지 저금통 크기만 한 찻주전자가 나왔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 나뭇잎 무늬가 있는 항아리 모양의 주전자였는데, 뚜껑 위에 얇은 손잡이도 있었다. 그리고 동그란 찻잔도 딸려 나왔다. 나는 불쑥 엄마, 아빠에게 차를 따라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른손을 쭉 뻗어 주전자 손잡이를 끙~ 잡아 올렸는데, 주전자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가까스로 맞은 편에 앉은 아빠 찻잔까지 손을 뻗어, "아빠, 받으세요!" 하고 주전자를 앞으로 조금 숙여 차를 따랐다. 엄마는 조금 불안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셨다. 뾰족한 주전자 주둥이에서 샘물이 솟아나오듯 굵은 물줄기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 물줄기는 짙은 갈색이었다.
몽글몽글 김이 나며 떨어지는 물줄기에 비해 찻잔이 너무 작아서, 금세 잔이 차버렸다. 나는 그것을 얼른 조절하지 못하고, 식탁에 물을 찔끔 흘렸다. 나는 점점 차 따르는 재미를 느끼며 엄마, 영우, 내 잔의 순서로 차를 가득가득 따랐다. 꼭 이웃나라 왕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기분이었다. 사극에서 보면 "차 맛이 아주 좋습니다!"하는데,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좋다고 할까?
솔직히 맛있는 차는 생각하기 어렵다. 맛보다는 향이 아닐까? 그리고 차를 마실 때는 뭔가 멋스러운 점이 있는 것 같다. 컵에 물을 가득 따라 한 번에 벌컥벌컥 마시는 거보다, 훨씬 찬찬하고 폼이 나니 말이다. 주전자로 잔에 꼬로록 따라주면 받은 사람은 좋다고 인사를 하고, 마시기 전에 향을 음~ 맡으니까,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나도 음~ 하고 눈을 감고 찻잔을 입에 대었다. 그건 그냥 따스하고 구수한 물맛이었다. 보리차 맛이랑 비슷한 거 같기도 했다. 가족들이 식사할 때, 잔이 비었을 때마다 나는 꼬박꼬박 차를 따라주었다. 우리는 그 뒤로도 세 주전자를 더 마셨다. 오늘따라 자장면 맛이 유난히 짜기 때문이기도 했다.
2009.02.15 일요일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시내 중국집으로 자장면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벽면에 일자로 붙어 있는 자리 중, 맨 구석 창가 자리를 얻었다. 그곳은 옆 손님들과 너무 딱 붙은 비좁은 자리였다.
외투를 벗어놓을 자리가 없어, 엄마는 외투를 둘둘 말아 각자 등 뒤에 쿠션처럼 고이게 하셨다. 바로 내 옆엔 입가에 자장면 소스를 듬뿍 묻힌 어린 아기가, 나를 빙글빙글 재미있는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식사가 나오기 전, 물 대신 돼지 저금통 크기만 한 찻주전자가 나왔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 나뭇잎 무늬가 있는 항아리 모양의 주전자였는데, 뚜껑 위에 얇은 손잡이도 있었다. 그리고 동그란 찻잔도 딸려 나왔다. 나는 불쑥 엄마, 아빠에게 차를 따라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른손을 쭉 뻗어 주전자 손잡이를 끙~ 잡아 올렸는데, 주전자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가까스로 맞은 편에 앉은 아빠 찻잔까지 손을 뻗어, "아빠, 받으세요!" 하고 주전자를 앞으로 조금 숙여 차를 따랐다. 엄마는 조금 불안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셨다. 뾰족한 주전자 주둥이에서 샘물이 솟아나오듯 굵은 물줄기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 물줄기는 짙은 갈색이었다.
몽글몽글 김이 나며 떨어지는 물줄기에 비해 찻잔이 너무 작아서, 금세 잔이 차버렸다. 나는 그것을 얼른 조절하지 못하고, 식탁에 물을 찔끔 흘렸다. 나는 점점 차 따르는 재미를 느끼며 엄마, 영우, 내 잔의 순서로 차를 가득가득 따랐다. 꼭 이웃나라 왕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기분이었다. 사극에서 보면 "차 맛이 아주 좋습니다!"하는데,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좋다고 할까?
솔직히 맛있는 차는 생각하기 어렵다. 맛보다는 향이 아닐까? 그리고 차를 마실 때는 뭔가 멋스러운 점이 있는 것 같다. 컵에 물을 가득 따라 한 번에 벌컥벌컥 마시는 거보다, 훨씬 찬찬하고 폼이 나니 말이다. 주전자로 잔에 꼬로록 따라주면 받은 사람은 좋다고 인사를 하고, 마시기 전에 향을 음~ 맡으니까,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나도 음~ 하고 눈을 감고 찻잔을 입에 대었다. 그건 그냥 따스하고 구수한 물맛이었다. 보리차 맛이랑 비슷한 거 같기도 했다. 가족들이 식사할 때, 잔이 비었을 때마다 나는 꼬박꼬박 차를 따라주었다. 우리는 그 뒤로도 세 주전자를 더 마셨다. 오늘따라 자장면 맛이 유난히 짜기 때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