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2008. 2. 13. 20:01일기

<촬영>
2008.02.12 화요일

오늘, 다음 주에 있을 연주회를 앞두고, 피아노 학원에서 비디오 촬영이 있는 날이다. 학교 끝나자마자,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갔더니, 원장 선생님께서 무슨 영화 감독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계셨고, 어떤 아저씨 한 분이 그 옆에서 몸을 굽혀 캠코더로 학원 내부 여기저기를 찍고 계셨다.

우리는 학원 중앙 복도,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는 작은 무대에 올라가 한 사람씩 차례대로 촬영하였다. 지난번에 우리가 선생님이 나눠주신 종이에,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을 적어 낸 적이 있는데, 오늘은 그걸 외워서 캠코더를 바라보고 이야기하듯이 말하는 것이다. 난, 엄마, 아빠에게 학원비 미루지 말고 꼬박꼬박 내달라고 썼다가, 원장 선생님께 다시 쓰라는 명령(?)을 받았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카메라를 보았다. 그런데 자꾸만 떨려서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듯 나오고, 배가 나와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아랫배에 힘을 주니까, 세타위에 급식 시간에 먹다 흘린 지저분한 국물 자국이 눈에 거슬렸다. 또 옷소매는 왜 이렇게 꾀죄죄하고 너덜너덜한지,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 가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올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2주 전, 티스토리 인터뷰를 설문지로 할 때는 떨렸어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글로 써서 재미있었는데, 이건 아주 짧은 몇 마디 하는 건대도, 직접 카메라에 얼굴을 비추고 하려니, 긴장이 되어 표정도 굳어지는 것 같았다. 원장 선생님께서 "상우야, 왜 그렇게 목소리가 딱딱해? 다시 해보렴!" 해서, 다시 한번 찍었는데, 이번엔 내가 외웠던 편지글은 다 까먹고 전혀 새로운 내용을 즉석에서 떠올려 말해버렸다.

촬영을 마친 사람은, 다음 사람 촬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교실로 들어가, 선생님께서 주신 음악 이론집을 조용히 읽고 있어야 하는데, 얼마 뒤에 아저씨가 교실로 따라 들어와 내가 이론집 읽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아저씨가 옆에 올 때마다 슬슬 옆 교실로 피해 다녔다. 아저씨는 담배를 피우는지, 옷에서 썩은 껌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개인 촬영이 끝난 후에는 단소실, 리코더실, 오카리나실에 각각 모여서 합주하는 모습도 찍었는데, 오카리나를 부는 아이가 나밖에 없어서 또, 나 혼자 오카리나실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촬영하게 되었다.

오늘 학원은 카메라 촬영장이 되어, 선생님들의 끊임없는 지시와 전화벨 울리는 소리, 아이들의 긴장된 말소리,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로 하루 종일 북적북적 들끓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에 들떠서 어떤 배역을 맡은 배우 같은 기분으로 우쭐우쭐 돌아다녔고, 진짜 촬영장은 어떤 분위기일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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