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소년 이발하기

2008. 1. 9. 10:01일기

<정글 소년 이발하기>
2008.01.08 화요일

아빠와 나는 오랜만에 남성 전용 미용실 <블루 클럽>의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갔다. 주인 할머니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빠가 "저는 됐고요, 애를 좀 잘라주려고요. 머리를 길르려고 하는데, 너무 길어서 눈을 찌르네요. 앞머리하고 옆머리를 다듬었으면 좋겠네요." 하고 자세히 부탁하셨다.

나는 이발하면서 예전처럼 간지러움을 못 참고 웃음보를 터뜨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무심코 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미용사 아주머니께서 "아냐, 세 번째 자리에 앉아라." 하시면서 내 목에 넓은 보자기를 두르고 가위와 빗을 가져 왔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가위 모양으로 만들어 내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집어들고 가위로 한 번에 샥 잘라내었다. 창꼬치가 사냥을 할 때 한 번에 작은 물고기를 빨리 삼켜버리는 것처럼.

나는 머리를 자르는 내내 눈을 감고 있다가 중간 중간 눈을 살짝 떠서 머리 모양이 바뀌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줌마가 핀셋으로 머리를 집으니 뿔처럼 양 옆머리가 솟아오르기도 하였고, 뒷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쭈뼛 서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내 머리는 다닥다닥 붙었던 지저분한 머리털에서 점점 단정한 머리 모양으로 바뀌어 갔다.

"왜 머리를 기르는 거니?" 하고 아줌마가 물으셨다. "그냥 길러보고 싶어서요. 여자애만큼 길러서 처녀 귀신 놀이도 해보고 싶구요, 묶어보고도 싶어요." 했더니, 아줌마는 껄껄 웃으시면서 "거참, 재미있는 녀석이네." 하셨다. 하지만, 나는 가위가 지나갈 때 간지러움을 참느라 온갖 애를 쓰고 있었다. '넌 이제 11살이 돼! 여기서 못 참고 웃어버리면 무슨 망신이니? 할 수 있어. 오늘만큼은 안 웃을 수 있다구! 제발!'

내가 스스로 끝까지 웃음을 잘 참아내었다고 다독거릴 때 이발은 끝이 났고,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이발을 마무리할 때 쓰는 바리깡이라는 기계를 쓰지 않아서 웃음 고개를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았고, 머리카락으로 덮였던 두 눈이 반짝반짝 잘 보여서 시원했다.

아줌마가 내 목과 얼굴에 붙은 머리털을 스펀지로 탁탁 털어내면서 말씀하셨다. "머리를 길르려면 숱을 고르면서 길러야지, 이렇게 막 산발을 하면서 기르면 안 돼요. 무슨 정글 소년도 아니구. 얼마나 보기 좋아." 나는 기분도 말끔해져서 의자에서 성큼 뛰어내리며 외쳤다. "아줌마, 고맙습니다! 정말 마술사 같으세요!" 아빠도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구, 이뻐졌네, 집에 가서 머리 감자." 하셨다. 나는 인사를 하고 나와서도 다듬어진 머리만큼 가벼운 기분으로 콩짝콩짝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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