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gwooDiary.com(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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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동물원
2008.06.14 토요일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포천에 있는 식물원으로 소풍을 갔다. 식물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입장권에 그려진 약도를 보고 애기 동물원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나는 동물원이라고 해서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토끼들만 있는 아주 작은 동물원이었다. 처음엔 조금 실망하였지만, 나보다 어려보이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철창 울타리 사이로 토끼들에게 풀을 넣어주는 것을 보고, 나랑 영우도 질세라 뛰어들어 자리를 잡고, 풀을 뜯어 토끼들에게 넣어주었다. 어떤 토끼들은, 세 마리가 한꺼번에 울타리에 몸을 딱 붙이고 입을 동그랗게 오므려 암냠냠냠 받아먹었는데, 난 그걸 보고 얼마나 귀엽든지 마음이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이 애기 동물원에서 제일 몸집이 큰 갈색 토끼는, 먹이를 ..
2008.06.16 -
장날
2008.06.06 금요일 오늘은 우리가 사는 5단지 안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날이다. 엄마가 뭐 사먹으라고 주신 돈 3천 원을 들고, 나는 영우와 아침부터 장이 열리기 시작하는 5단지 입구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장터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 구수하고 짭짤하고, 매콤한 먹거리 냄새가 우리를 끌어당겼다. 나는 갑자기 배가 고파져 구경하는 것은 뒤로 미루고, 코를 킁킁거리며 묵밥 코너를 지나, 도너츠 팔려고 아저씨가 천막을 치는 곳을 지나, 즉석 탕수육 코너를 지나, 핫도그와 떡볶이 파는 가게 천막 앞에 도착했다. 마침 핫도그가 뜨거운 기름에 지글지글 담긴 채, 튀겨지고 있었고, 떡볶이도 철판 위에서 빨갛게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나랑 영우는 핫도그 한 개와 어묵 한 꼬치씩 사서, 양손에 들고 번갈..
2008.06.09 -
달팽이와 수업하는 아이들
2008.05.29 목요일 3교시 체육 시간이 끝나고 중앙 화단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데, 화단 풀숲 여기저기에서 달팽이가 보였다. 실내화를 갈아신던 아이들은 달팽이를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집어 올리기도 하고, 만져보기도 하였다. 달팽이를 자세히 보니, 조그만 게 귀엽기도 하고, 툭 튀어나온 까만 눈에 뭔가 닿으면, 눈을 살 속으로 집어넣었다가, 다시 쑥 나오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제각기 달팽이를 몰래몰래 교실로 가져갔다.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은 달팽이를 나름대로 보관하며 수업을 들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하여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아이는 언제 준비했는지, 커다란 병뚜껑에 휴지를 깔고, 물을 적셔 그 위에 풀잎을 몇 장 얹어, 달팽이를 올려놓았다. 또 어떤 아이는 책상 위에..
2008.06.02 -
고무 판화는 살아있다!
2008.05.27 화요일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이면지를 나누어 주시며 "너희들이 판화에 새기고 싶은 그림을, 이 이면지에 밑그림으로 여러분 마음껏 그려보세요!" 하셨다. 나는 이면지에 화분에 심은 예쁜 꽃 한 송이를, 물결 치는 듯한 느낌으로 그렸다. 밑그림을 다 그리고 나자, 이제 우리가 이면지에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고무 판화에 옮겨 조각칼로 새기기 시작했다. 이 작업이 상당히 까다로워, 우리는 땀을 흘리며 끙끙 조각칼로 그림을 새겼다. 나는 조금 더 쉽고 잘 그릴 수 없나 생각하다가, 이면지에 그린 그림을 고무 판화에 올려놓고, 연필 자국을 따라 칼로 살살 본을 떴다. 그렇게 하니까 힘도 덜 들고 새기는 것이 더욱 즐거워졌다. 이면지를 치우고 고무 판화 위에 남은 꽃 모양을 더 크고 굵게 새겼다. ..
2008.05.31 -
책, 나의 둘도 없는 친구
2008.05.21 수요일 이 이야기는 내가 책과 어떻게 만났고, 내가 책과 어떻게 친해졌으며, 지금은 어떤 관계인지 정리해 본 글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책은, 아주 얇고 그림이 있는 짧은 동화책이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가을날의 단풍나무 사진처럼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있다. 내가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이나,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에, 엄마는 책을 읽어주셨다. 나는 엄마 곁에 딱 붙어 구름 침대에 누운 기분으로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곤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이상하게도 친구가 없었다. 학교에 들어오면 책에서 읽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한 친구들을 만날 거라고 잔뜩 기대했는데, 막상 친구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책을 좋아해서 책에 나오는 인물들 이야기나, 대화를 흉내 내기 ..
2008.05.26 -
춤을 추며 청소를!
2008.05.21 수요일 수업이 끝나고, 며칠 동안 벌칙을 받은 친구들이 모여 어학실 청소를 하였다. 나는 사회 숙제를 실수로 엉뚱하게 다른 것을 해간 데 대한 벌칙으로 청소 팀에 끼었다. 마침 내일은 우리 학교와 형제 학교를 맺은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어떤 어른들이 어학실을 방문하는 날이기도 하다. 몇몇 친구들이 걸레를 빨아오는 동안, 나는 남은 친구들과 함께 교실 바닥을 비로 쓸었다. 한 친구가 "야, 여기 왜 이렇게 더럽냐? 우리 오늘 청소 좀 깨끗이 해야 되겠다!" 하고 말하자마자 모두 힘을 내어 구석구석 열심히 쓸었더니, "쓰삭, 쓰으으삭~" 하는 비질 소리가 어학실 안을 바람 소리처럼 가득 메웠다. 그런데 어학실 마룻바닥이 무슨 검은색 물감을 한바탕 뿌려놓은 듯이 군데군데 더러워서 아무리 ..
2008.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