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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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동전 바꾸기
2010.08.03 화요일 이삿짐을 싸느라 내 방 정리를 하다가, 낡은 돼지 저금통 하나를 발견했다. 미술 보관함에 묻어두었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던 이 돼지 저금통은, 낡아서 금이 쩍쩍 가있는 부분을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저금통 안에는 밑바닥을 묵직하게 채우는 돈이 있었다. 동전을 흔드니 쐐아쐐아~! 소리가 났다. 나와 영우는 저금통을 흔들어서, 동전 넣는 구멍으로 동전을 빼내었다. 동전은 잘 나오지도 않고 생각보다 양도 훨씬 많았다. 동전은 정말 양이 줄지 않는 것처럼, 계속 찔렁찔렁~ 침대 바닥에 쏟아졌다. 나와 영우는 돈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놀라서 눈알이 빠질 것처럼 동그래지고, 입이 동굴처럼 쩍 벌어졌다. 동전은 계속 쏟아지더니 결국에는 저금통 바닥을 들어내고, 내 침대 위에 기분 좋게 ..
2010.08.04 -
추운 날의 라틴 댄스
2009.11.22 일요일 포천 허브 아일랜드 연못은 벌써 살얼음이 얼었다. 추워서 덜덜 떨며 걷다가, 우리는 라틴 댄스 공연을 하는 임시 야외무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야외무대를 둘러싼 울타리 바깥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나무로 만든 무대 끝 사람들 앞으로,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어린 무용수들이 줄지어 걸어나왔다. 모두 석고상같이 하얀 얼굴에 고양이처럼 길게 올라간 눈 분장을 하였다. 남자 아이들은 가슴이 파진 검은 블라우스에 꽉 끼는 검은 바지를 입었고, 여자 아이들은 화려한 비키니 수영복같이 거의 살이 드러나는 무대 옷을 입고 나왔는데, 바람이 차가운데다 빗방울까지 날려서 참 딱해보였다. 대부분 키는 나보다 조금 커 보이는데, 몸은 내 반쪽만큼 말랐을까? 추워서 그런지 긴장해서 그런지 다 ..
2009.11.23 -
윗몸을 힘껏 말아 올려요!
2009.10.20 화요일 오늘은 초등학교 들어와서 처음으로 기초체력을 테스트하는 체력장을 하는 날이다. 5교시, 우리 반은 유연성 테스트를 받기 위해, 남자 여자 키순으로 복도에서 줄을 맞추어 강당으로 향했다. 선생님께서 강당 문을 여시자, 벌떼가 벌집에서 한꺼번에 나오는 것처럼, 아이들이 좁은 강당 문 안으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갔다. 강당에는 이미 5학년 아이들 줄로 꽉 차 있었다. 우리 반은 강당 창문 벽 쪽에 두 줄로 딱 붙어 섰다. 무대에서 1반 선생님이 마이크를 들고 "아직 2반이 안왔으니 시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셨다. 2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옆에 아이와 제각기 가위 바위 보, 묵찌빠, 참참참 놀이를 하며 놀았는데, 무려 2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떠들고 노는 소리가..
2009.10.22 -
짜릿한 피구 시합
2009.10.07 수요일 1교시, 강당에서 여자 대 남자로 피구 시합을 하였다. 모두 세 번의 시합을 했고, 나는 두 번째 시합까지 초반에 공을 맞아 탈락했다. 그래서 마지막 판에는 무조건 끝까지 살아남으리라! 하는 각오로 임했다. 나는 처음부터 아이들 틈에 섞여 공과 멀찍이 떨어져서 뛰어다녔다. 상대방 팀의 선수가 공을 잡으면, 공을 던지려 하는 반대쪽으로 미끄러지듯 뒷걸음질쳤다. 아이들이 슝슝~ 공을 던지는 걸 보면, 내가 공을 던지는 것처럼 짜릿해서, 오른손을 주먹 쥐고 높이 들어 소리를 질렀다. 처음에는 여자팀의 이승희가 공을 높이 던졌다. 나는 공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뒷걸음질쳤는데, 어느 틈에 공을 받은 이예진이, 바로 내 뒤에서 칼을 잡은 것처럼 빠아아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놀랐는..
2009.10.08 -
2006.09.30 병문안
2006.09.30 토요일 선생님은 능곡 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능곡 병원은 우리집에서 가깝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병문안을 하였다. 선생님이 계신 입원실로 갔다. 문을 열었더니 불은 꺼져 있었고 텔레비젼이 켜저 있었다.엄마는 나보고 선생님 하고 불러 보라고 했다.나는 개미만한 목소리로 "선생님."하고 두세번 불러 보았다. 선생님은 천천히 일어나시면서 "상우 아냐?"하셨다.선생님께서는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하지만 허리가 안좋아서 계속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 침대 위로 올라가 선생님과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 나누었다.선생님을 가까이서 보니까 선생님 얼굴에 나같은 어린이다움이 엿보였다.선생님은 쥬스도 주시고 빨리 나아서 학교에 가겠다고 약속도 하셨다. 어제밤에 걱정이 되어 잠도 못잤는데 이..
2006.09.30 -
2006.07.30 바다
2006.07.30 일요일 우리는 바닷가 갯벌 앞에서 준비 운동을 하였다. 팔을 허리 옆까지 대고 굽히기도 해보고 손을 무릎에 대고 굽혀 보기도 하였다. 우리는 바다 얕은 데서 깊은 곳으로 옮겨 갔다. 나는 개구리 헤엄을 쳤다. 나는 학교에서 방학을 하는 이유를 이제 좀 알 것 같다. 껍데기를 벗으라고 였다. 껍데기란 공포심과 불쾌함 그리고 증오감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바닷물이 그걸 다 씻어주는 것 같았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나에게 욕을 하고 머리를 왜 때리는지에 대한 공포심이 있었다. 항상 느리다고 어딜 가나 구박을 받다 보니 누가 날 무시하는 행동을 하면 슬픔과 분노가 차올라서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린 스님처럼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파도가 나의 그런 것들을 마그마가 물건을 녹이듯..
200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