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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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수 없었던 경기장
2010.12.05 일요일 나는 아침부터 너무나 들떠 있었다. 그리고 "아빠! 오늘 약속했잖아요!" 하며 아직 주무시는 아빠를 흔들어 깨웠다. 머릿속에서는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바로 태어나 처음으로 축구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직접 생생하게 본다는 사실을! 그것도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경기를! 며칠 전 내 동생 영우는, 기특하게도 친구에게서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K리그(우리나라 프로축구 리그)의 챔피언 결정전을 볼 수 있는 표를 얻어왔다. 그것은 어린이 무료권과 어른 50% 할인권이었다. 그런데 어린이는 1명만 무료라서, 나는 아쉽게도 나만 입장료를 내야 한다고 밥 먹다가 투덜거렸는데, 할아버지께서 입장료를 만 원 주시면서 다녀오라고 하셨다. 영우와 나는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에 빠져..
2010.12.08 -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가정
2010.11.24 수요일 오늘 선생님께서 내주신 일기 주제는 이다. 나는 언뜻 내가 생각하는 좋은 가정의 모습을 떠올렸을 때, 우리 가정이 그 예가 아닐까? 생각했다. 뭐 특별히 내세울 건 없지만, 가족 모두 살아 있고, 팔다리는 멀쩡하고,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았고, 이 정도면 완벽한 가정의 모습이 아닐까? 사실 뭘 더 바라는가? 우리 주변의 많은 가정은 심하게 아픈 사람이 있어서 슬픔과 피로에 잠겨 있거나, 가족끼리 사이가 안 좋아서 불행하다고 느끼고, 심지어는 불의의 사고로 가족과 이별하기도 하고, 부모님께서 이혼을 해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일도 많은데... 그에 비해 제대로 된 가정이라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복 받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곰곰 더 생각해보니 그냥 가정이 온전한 틀만 가지고..
2010.11.27 -
추석에 모인 가족
2010.09.21 화요일 나는 작지만 힘차게 말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어휴, 그랴~ 이제 오는 겨?"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를 마중 나와 주셨다. 그 옆에는 "왔어요?" 하며 팔짱을 끼고 맞아주는 둘째 고모와, 뒤에서 지현이 누나와 수연이가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서 가만히 인사하였고, 더 뒤에 집안에서는 할아버지께서 뒷짐을 지고 "왔냐?" 하시는 모습이 그림처럼 보였다. 할아버지 댁에 들어서자, 오랜만에 아파트의 탁 트인 넓은 마루가 보여 신이 났다. 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절을 하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추석은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소파에 앉아서 TV에 초점을 맞추셨다. 할아버지는 새로운 소식을 찾는 호기심 많은 어린이처럼..
2010.09.25 -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
2010.09.11 토요일 나는 얼마 전에 TV에서 나온 감동적인 영화, 를 보고서 개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솟구쳐올랐다.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읽은 책 중에 개 키우기에 관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에는 귀여운 개와 주인과 친하게 지내며 교감을 하는 개의 사진들이 애틋하게 실려 있다. 어느덧 나는 개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다가 분화구처럼 폭발하게 되었다. 음, 개를 보고 있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지고, 다른 사람들이 개와 친하게 지내고 재미있게 놀며 마음을 나누는 것을 보면, 나도 그러고 싶다. 물론 개가 짖고, 털이 많이 빠지고, 사료비에 예방 접종, 똥 누고 오줌 싸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털이 안 빠지고 잘 짖지 않는 종의 개도..
2010.09.14 -
하늘의 눈물
2010.05.24 월요일 지금은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엊그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아직도 하늘을 깜깜하게 덮어버리고 있다. 꼭 1년 전 돌아가신 그분을 애도하듯이 말이다. 어린 손녀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에 반항이라도 하듯, 개구쟁이 옆집 할아버지처럼 푸근하게 웃어주고, 나이 어린 학생에게도 진심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셨던 그분! 그분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며, 온 국민이 오늘 내리는 비처럼 펑펑 울었던 날이 바로 1년 전이다. 그날, 세상에 지진이 난 것처럼 충격적인 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던 그날! 내가 처음으로 아빠의 눈물을 보았던 날이었다. 아! 사실 나는 그분이 대통령이었을 땐, 너무 꼬맹이였다. 그래서 그냥 인상 좋은 대통령 아저씨로만 생각했었다. 내가..
2010.05.26 -
설날 할머니 집
2010.02.14 일요일 "상우야? 상우야? 깨야지?"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홍알홍알 잠결에 들려왔다. 나는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내 눈앞에는 엄마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는 얼굴로 딱 붙어 계셨다. 엄마는 "어! 진짜로 일어났네!" 하시고서 나한테서 떨어져 이번에는 영우 옆으로 가셨다. 그런데 일어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정말로 푹 오랜만에 개운하게 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보통 축농증이라는 병이 있어 밤잠을 설치거나, 자고 일어나도 몸이 무겁고 어지럽거나 부스스한데, 할머니 집에 와서 자니 온몸이 개운한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우와! 정말 개운하다!" 절로 감탄사가 입에서 나왔다.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이불 위에 짠! 하고 섰다. 방에 놓여 있는 책상 앞 닫힌 창문으로, 아름다운 빛..
2010.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