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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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판결처럼 우울한 날씨
2009.10 31 토요일 점심을 먹고 축농증 치료를 받으러 상가 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제까지 아파트 단지마다 붉고 노란 나뭇잎이 땅바닥에 가득 뒹굴었고, 나뭇가지에도 빨간색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예뻤는데, 오늘은 다르다. 오전부터 내리던 비가, 그동안 가을을 지켰던 풍성한 나뭇잎을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모두 떨어내버렸다. 그래서 나뭇가지들은 바짝 말라서 쪼글쪼글해진 할머니 손처럼, 또는 X레이에 찍은 해골의 손뼈처럼 가늘가늘 앙상하다. 내가 조금만 건드려도 톡 부러질 것 같다.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었던, 가을의 빨간 축제가 매일 열리던 길목은 이제 끝났다. 내가 걷는 길은, 차가운 비가 투툴투툴 내리는 추억 속의 쓸쓸한 길이 돼버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우산 속에서 햇빛을 못 받아 어..
2009.11.01 -
회장 선거
2008.03.06 목요일 나는 오늘 있었던 회장 선거에서 떨어졌다. 떨어질 땐 마음이 아팠지만, 예상했던 일이라 지금은 덤덤하다. 사실 내가 관심이 있었던 것은 회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과연 나에게 몇 명이나 투표 해줄까였다. 나는 아이들이 나를 믿고 따를 수 있으며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투표수로 가늠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길은 내게 너무 멀었다. 반 친구들에게 추천받은 6명의 후보가 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 나는 그 안에도 끼지 못하였다. 후보 중에서 남자 3명, 여자 2명이 채워졌을 때, 남은 여자 후보 1명을 남기고 내가 예은이를 추천 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6명이 다 차자, 선생님께서 이 중에 혹시 기권할 후보 없느냐고 물어보셨다. 그러자 남자 후보 1명이 손을..
2008.03.08 -
2007.03.08 투표
2007.03.08 목요일 드디어 투표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선생님이 이렇게 도장 찍은 종이를 나누어 주면 반으로 접어서 왼쪽에는 남자 중에서 맘에 드는 회장 후보를 쓰고, 오른쪽에는 여자 회장 후보를 각각 1명 씩 쓰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순간 우리 반은 아무도 없는 밤길처럼 조용해졌다. 놀 때는 그렇게 시끄럽던 우리 반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 누구를 뽑을까 고민하느라 쥐 죽은듯 조용해진 것이다. 어떤 아이는 이미 결정했다는 듯이 단호하게 적었고, 어떤 아이는 식은 땀을 흘리며 쓸락말락 연필만 만지작거렸다. 나도 갑자기 잘 모르는 애들을 뽑으려니 갈피가 안잡혀서 머리가 좀 아팠다. 그래서 평소에 하던 모습과 오늘 연설을 생각하며 책임감 있는 아이를 찾아 보았다. 그래, 얘라면 거뜬이 해낼 수..
2007.03.08